마침내 열린 노란봉투…그 안에 담겨 있는 것들[전문기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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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기자I 2026.03.10 07:41:38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하청·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 '춘투' 합류
使측 '묻지마' 교섭거부·법적 대응, 사회적 비용 늘리고 갈등 격화
勞측 기업 궁지로 몰아붙이면 웃는 쪽은 로펌과 로봇·AI 회사뿐
노란봉투안 경고장이냐, 새로운 시대로 가는 지도냐는 노사 선택에 달려

노란봉투법이 오늘(10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 시행이 노사화합의 새로운 시대로 가는 길을 열지, 갈등과 반목을 격화하는 방아쇠가 될지는 노사 양측의 선택에 달렸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공공운수노조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노정 교섭 법제화, 노조법 23조 시행령 폐기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정민 이데일리 경제전문기자]봄이 오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다. ‘춘투(春鬪)’로 불리는 노사협상이다. 임금·단체 교섭의 시작이 3월 전후인 이유는 기업 실적이 확정되고, 노동조합 요구안이 정해지는 시점이어서다.

여지껏 춘투의 흐름은 대체로 비슷했다.

노조 요구안이 나오고 노사 교섭이 진행된다.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 집회나 파업으로 이어졌다. 형태는 다양해도 기본 틀은 그랬다.

올해는 여기에 새로운 모습이 하나 더 더해질 터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으로 그동안 춘투 밖에 있던 하청 노동자,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민주노총은 올해를 ‘원청 교섭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노총은 이미 금속·공공운수·서비스·건설 등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자동차·철강·조선 등 제조업 사내하청은 물론 공항·철도·지하철 같은 공공서비스, 택배·콜센터·유통 등 서비스 업종도 대상이다.

한국노총은 노란봉투법 시행에 맞춰 ‘200만 한국노총 조직화 사업단’을 출범시키고 하청 노동자와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조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만큼 조직 확대의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다.

산업현장은 어떻게 달라질까?

첫 번째는 원-하청 교섭이 첫발부터 엇나가는 경우다.

자동차 부품이나 조선 기자재처럼 하청 구조가 복잡한 제조업 원청사들은 기존 계약을 이유로 교섭 의무가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노조는 노동위원회에 사용자성 판단을 신청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갈등은 쉽게 길어진다. 사측이 법적 대응에 들어가면 노동위원회 심판에 이어 행정소송, 대법원 판단까지 이어지면서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노조 상급단체가 개입하고 정부가 관여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기업의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이유다. 자격 없는 노동자 단체가 교섭을 요구하거나, 교섭 범위를 넘어서는 의제를 테이블에 올린다면 법적 대응을 선택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결론이 어느 정도 예측되는 사안까지 시간 끌기나 진 빼기식 대응을 택하는 건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법과 정부를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는 기업은 없다.

두 번째는 교섭 테이블이 열리는 경우다.

물류나 유통처럼 작업 환경과 안전 문제에 대한 원청 책임이 비교적 분명한 산업에서는 원청이 일정 부분 교섭에 응하는 사례가 등장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물류·유통 업종에서는 원청과 하청 노동자들이 안전 문제나 작업 환경 개선을 놓고 협의를 진행한 전례가 있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이런 형태의 대화가 제도적인 교섭으로 발전할 수 있다.

교섭이 시작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교섭 의제 범위를 둘러싼 노사간 견해차가 걸림돌이다.

노조는 인력 운영이나 물량 배분 같은 문제까지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고, 기업은 안전이나 작업환경 등 제한된 범위만 교섭 대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결국 현실적인 의제를 중심으로 대화의 폭을 넓혀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노조 역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모든 사안을 교섭 테이블에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영 전략이나 사업 구조까지 교섭 의제로 확대하려 한다면 결국 대화의 문은 닫힌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갈등의 확장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을 여는 일이다. 기업을 궁지로 몰아붙이면 결국 웃는 쪽은 로펌과 로봇, AI 회사들뿐이다.

교섭이 막히든, 열리든 중요한 역할을 맡은 곳이 있다. 중앙노동위원회다. 사용자성 여부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판단해야 기업들이 불필요한 소송전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교섭 대상 여부와 의제의 적법성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현장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이제 막 시험대에 올랐다.

이 봉투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대화와 소통이 없다면 그 안에는 노사 모두에게 보내는 경고장이 담길 것이다. 갈등과 분쟁이 반복되는 새로운 노사 충돌의 시대가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대화와 소통이 작동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노란봉투 안에서 새로운 노사협력의 길이 그려진 지도가 들어 있을 것이다.

경고장이 될지, 지도가 될지는 결국 노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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