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순용 의학전문기자] 국내 연구진이 기존 소변배양검사법으로는 원인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웠던 재발성 요로감염의 새로운 감염 기전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특히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을 통해 방광 내 여러 세균이 상호작용하며 감염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반복되는 요로감염의 원인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정밀한 진단적 접근 필요성을 제시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비뇨의학과 김영호· 진단검사의학과 신희봉·고려대학교 생명공학과 최해웅 교수팀이 잘 치료되지 않는 재발성·만성 요로감염의 원인이 ‘복합 균주의 상호작용’과 관련돼 있음을 세계 최초로 밝혔다고 31일 밝혔다.
재발성 요로감염은 사망률이 폐렴 다음으로 높을 정도로 치명적이며, 세계적 인구 고령화로 요양병원 감염에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또, 항생제 내성률은 매년 높아져, 세계보건기구(WHO)의 중점 감시 대상 질환으로 분류되고 있다.
요로감염은 그동안 소변이 무균 상태라는 잘못된 전통적 인식에 따라, 대장균 등 특정 원인균이 단독으로 감염을 일으킨다는 전제로 진단과 치료가 이뤄져 왔다. 요로감염의 약 80%가 대장균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일반적으로 소변배양검사를 통해 원인균을 확인하고 이에 맞는 항생제를 투여하는 방식으로 치료해 왔다.
그러나 실제 임상에서는 항생제 치료 후에도 감염이 반복되는 경우 그 원인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기존 소변배양검사는 특정 세균의 증식 여부 확인에는 유용하지만, 방광 내 미생물 환경까지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팀은 재발성 요로감염 환자 131명의 소변을 대상으로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을 시행해 방광 내 미생물 환경을 정밀 분석하고 복합 균주 감염에 대한 평가를 시행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환자에서 특정 균이 단독으로 우세하지 않고 여러 세균이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병원성 대장균과 질염 유발 균주인 가데넬라균(Gardnerella)이 함께 관찰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러한 미생물 환경이 실제 감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확인했다. 가데넬라균은 방광 상피에 뚜렷한 손상이나 염증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숙신산(Succinate)이라는 대사물질을 활발하게 분비했다. 숙신산은 방광 상피세포의 숙신산 수용체 GPR91을 자극하고, 그 신호가 대장균이 방광 벽에 달라붙을 때 이용하는 방광 벽의 유로플라킨(Uroplakin) 발현을 선택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방광 상피에 대장균이 달라붙을 수 있는 부착 지점이 늘어나면서 감염에 더 취약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연구팀은 이 경로를 ‘숙신산-GPR91-유로플라킨 축(succinate-GPR91-uroplakin axis)’ 이라고 명명했다.
실제 동물 실험에서도 가데넬라균에 먼저 노출된 후 대장균에 감염된 경우 대조군에 비해 방광 내 대장균 균량이 3배 이상 증가했다. 방광 상피세포 실험에서도 가데넬라균에 먼저 노출된 경우 대조군보다 세포 내 대장균이 7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유전자 편집으로 GPR91 수용체를 제거하자 유로플라킨 증가와 대장균 부착 증가 현상이 사라져, 세균 간 상호작용이 방광의 감염 취약성을 변화시키는 핵심 기전임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 취약 상태를 되돌릴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건강한 여성의 소변에서 분리한 유익균 락토바실러스 크리스파투스(Lactobacillus crispatus)를 투여하자, 대장균 균량이 50% 이상 감소했다. 유익균이 만드는 젖산을 투여했을 때도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기존 소변배양검사에서 특정 원인균의 존재 여부만 확인하는 기존 검사법에서 나아가, 복잡성 및 재발성 요로감염자의 경우 방광 내 전체 미생물 환경과 세균 간 상호작용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영호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요로감염의 원인을 대장균과 같은 하나의 원인균만의 문제로 본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방광에 공존하는 다른 미생물 구성과 상호작용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사실을 규명한 첫 연구”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기존 검사만으로 원인을 찾기 어려운 재발성·만성 요로감염 환자에서는 진단과 치료 방식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검사법을 도입해 무분별한 예방적·경험적 항생제 사용을 줄이고, 환자별 감염 원인에 근거한 정밀 치료로 나아간다면 미래 감염의료 분야 선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으며, 연구 결과는 마이크로바이옴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 ‘Microbiome’ 최근 호에 ‘Gardnerella piotii enhances uropathogenic Escherichia coli infection through a succinate-GPR91-uroplakin axis’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