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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위기는 한 국가의 많은 수의 은행들이 파산하거나 갑작스럽고 심각한 수준의 계좌인출이 발생하며, 기업과 금융기관의 채무불이행이 급증하는 시기이다. 한국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은행 위기도 같이 겪은 바 있다.
은행 위기 기간엔 벤처캐피털과 같은 대안적 금융 수단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미시제도연구실 분석이다. 제조업체의 기술혁신을 위한 연구·개발(R&D) 자금 조달은 주로 은행 신용대출로 이뤄지기 때문에, 은행 위기 시 벤처캐피털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는 셈이다.
미시제도연구실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31개국 제조업체들을 중심으로 각 산업 특허수를 혁신 수준으로 보고, 1980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특허청(USPTO)에 등록된 특허 자료를 기초로 은행 위기 자료, 벤처캐피털 자료를 결합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외부금융 의존적인 산업일수록 은행 위기 발생 시 혁신 활동이 위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위기 시에는 각 산업 외부금융 의존도가 한 단위 증가할 때마다 특허 출원수와 인용수가 각각 35.9%, 11.5% 감소하며 특허 독창성과 일반성 점수도 각각 17.6%, 26.6% 감소했다.
반면 은행 위기의 부정적 영향은 벤처캐피털이 발달한 곳일수록 완화되는 것으로 나왔다. 한 국가의 벤처캐피털 지수가 평균보다 일정 수준 높을 경우 은행 위기의 특허 출원수, 인용수, 독창성, 일반성에 대한 부정적인 충격이 완전히 상쇄됐다.
이같은 완화 효과는 지적재산권 제도와 민주주의적 정치제도가 확립된 국가일수록 큰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캐피털 투자자들은 투자기업의 경영활동 또는 기술혁신 활동에 깊숙이 관여하기 때문에 지적재산권을 무단으로 도용할 가능성이 있고,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유력한 인물들이 주로 벤처캐피털 투자자인 만큼 정치적인 부패 정도에 따라 투자 비효율성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벤처캐피털 투자 수준은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미국, 이스라엘, 캐나다, 영국에 이어 5위다. 성원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과장은 “한국 벤처캐피털 투자 수준이 OECD 국가 평균보다 높다”며 “대안적 역할을 하기 충분한지는 따로 분석해봐야 알겠지만, 과거보다 한국에서 벤처캐피털이 대안적 역할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벤처캐피털 시장 확대를 위해선 정치·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따랐다. 성 과장은 “기술혁신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 벤처캐피털 투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고, 신용경색 또는 은행 위기 시 벤처캐피털이 은행 신용대출의 대체적인 역할을 기술혁신 측면에서 수행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며 “벤처캐피털 시장이 확대되더라도 정치·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효율적인 투자 지원이 어려울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