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의제 제한없는 논의’ 제안…의료계, 협의체 합류 '촉각'

안치영 기자I 2024.11.04 11:49:36

전공의·의대생, 여전히 대화 거절…‘내년 정원 초기화 선제 조건’
의협 임총 ‘분기점’…탄핵 실패·비대위 불발 후 협상 시도 가능성
의협, 비대위 구성되면 전공의·의대생과 연대 강화할 수도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정치권 주도로 의정갈등 해결을 위한 ‘의제 제한 없는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전공의·의대생의 참여는 아직 요원하지만 의대 교수 집단의 참여로 협의체는 일단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대한의사협회의 참여는 비상대책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협의체 참여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정치권, ‘의제 제한 없는 협의체’ 사실상 합의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11일 협의체를 출범하고자 한다”면서 “의제 제한 없이 논의해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오해가 해소되고 신뢰가 쌓이길 기대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협의체 내에서 조건 없이 모두 대화에 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어 협의체 참여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권과 정부뿐만 아니라 의료계 또한 선제 조건을 내걸지 말고 협의체 내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 측의 설명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협의체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부정적인 의제 설정을 배제하는 방식 등이 없어야 하고 여당도 정부의 이러한 태도를 제어해 줘야 한다”면서 “이러한 기준이 없다면 결국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협의체가 유명무실해질 것이고 국민적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야 모두 ‘의제 제한 없는 협의체’ 구성에 나서면서 정부 또한 협의체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달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가 협의체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당시 “향후 협의체를 통해 의료개혁 과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의료시스템이 정상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아울러 의협을 비롯한 다른 의료계 단체들도 협의체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전공의·의대생은 여전히 ‘불참’…의대 교수 참여 속 협의체 논의 시작

전공의들의 모임인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2월부터 △필수의료 패키지와 의대 2000명 증원 전면 백지화 △의사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사고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부당한 명령 전면 철회·사과 △업무개시명령 폐지 등 7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협의체에 참여하기 위해선 이러한 요구가 수용되어야만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논의부터 하자는 협의체 방식과 결이 달라 이들이 대화의 장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반면 이미 협의체 참여 의사를 밝힌 의학회와 의대협회를 포함해 대한병원협회나 산하 단체 등이 협의체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간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지방의료원이나 국립대병원, 사립대병원, 요양병원, 전문병원 등도 필요에 따라나설 수 있다는 분위기다.

◇의협 임총, 협의체 합류 분기점 될까

한동훈 국민의 힘 대표는 협의체 구성 일자를 11일로 제안했다. 바로 그 전날인 10일, 임현택 의협 회장 탄핵을 논의·결정하는 의협 임시대의원총회가 열린다. 의협은 현재 회장 탄핵에 대응하느라 협의체 참여를 신경쓸 상황이 아니다. 의협 관계자는 “집행부 모두 탄핵을 막기에 바빠 다른 업무는 모두 뒤로 밀려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조현근 대한의사협회 대의원은 지난달 21일 임 회장의 불신임 발의 동의서를 받는다는 공문을 운영위원회에 발송했으며 나흘만에 불신임 발의요건을 충족하는 103명의 동의서를 받았다.

조 대의원은 불신임 사유에 대해 “임 회장이 정관 및 대의원총회 의결을 위반해 회원의 중대한 권익을 위반하고, 협회의 명예를 현저히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조 대의원은 이어 “학생과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정부보다 의협이 더 밉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현재 의협 집행부는 학생과 전공의뿐만 아니라 의사 회원들에게도 완벽히 신뢰를 잃었으며 지금의 의협은 사실상 지도부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하루빨리 현 의협 집행부의 책임을 물어 혼란 상황을 정리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에 불을 지필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의 구성이 시급하다는 것이 조 대의원의 주장이다.

이에 임시총회는 임 회장의 탄핵과 함께 비대위 구성도 논의한다. 임 회장이 탄핵당하지 않더라도 비대위 구성이 가능하다. 비대위는 정부와의 협상과 투쟁 노선 설정 등의 권한을 가진다. 비대위가 구성되면 임 회장은 회장직을 보전하더라도 사실상 의정갈등 시국 속 주요 인물에서 하차하게 된다.

비대위는 당분간 의협 회원들과 투쟁 혹은 협상 노선을 저울질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아직 정부와 강경 대치 중인 전공의와 의대생의 의견을 존중해 대정부 투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애초에 비대위 명칭이 ‘정부의 의료농단 저지 및 의료 정상화를 위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다.

반면 탄핵과 비대위 구성이 모두 불발되면 의협 내부는 극심한 혼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임 회장이 의학회와 의대협회를 내세우면서 협의체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이어나가거나 아예 대정부 노선을 바꿔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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