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품은 브릭스 “달러 쓰지 말자” 외치는 이유

이명철 기자I 2023.08.25 16:36:05

브릭스, 사우디·이란·이집트 등 6개국 가입 승인
브릭스 회원국간 자국 통화 기반 결제 가능성 타진
中 주도 ‘탈달러화’ 일환…사회주의 확산 우려도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는 회원국 영문명의 앞 글자를 조합한 명칭이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6개 국가가 새로 가입함에 따라 브릭스는 ‘신흥 개발국의 모임’이라는 고유 명사로 자리 잡게 됐다. 회원국이 늘어나면서 브릭스가 전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이에 따른 영향력도 확대될 전망이다. 브릭스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중국은 산유국들의 지지를 얻어 ‘탈달러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4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AFP)
◇브릭스 커지자 만족한 시진핑 “희망찬 미래”

브릭스는 남아공에서 열린 제15차 정상회의에서 아르헨티나·이집트·에티오피아·이란·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6개국을 신규 회원국으로 승인키로 했다. 정식 가입 시기는 내년 1월이다.

브릭스의 확장은 이번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 압박에 맞설 지원 세력이 필요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모처럼 국제무대에 나서 “더 많은 국가들을 브릭스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역시 돌파구가 절실했다.

시 주석은 정상회의 후 브리핑에서 브릭스 확장과 관련해 “역사적이고 새로운 출발점”이라며 “브릭스 국가들이 힘을 합치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고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새로 가입하는 국가들이 산유국 중심으로 이뤄져 브릭스의 경제 규모는 크게 확대된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브릭스의 총생산(GDP)이 구매력 평가 기준 세계의 36%로 확대되고 인구는 전세계의 46%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 관영지 영자신문인 글로벌타임스(GT)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미국 달러화 의존도를 낮추는 탈달러화 또한 이번 정상회의의 초점이었다고 보도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브릭스 국가 지도자들이 각국 재무부·중앙은행에 자국 통화 기반 결제 수단 및 플랫폼의 출시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기축통화인 달러 대신 브릭스 내에서 자국 통화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달러화, 즉 미국의 중요성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기존 브릭스 회원국들이 탈달러화를 외쳤다면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겠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신규 회원국이 될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은 원유를 생산·판매하는 산유국이기 때문이다.

24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에서 회원국 지도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AFP)


원유는 통상 달러화로 결제가 이뤄지는데 이에 따라 국제유가와 달러화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자국 통화나 위안화 같은 브릭스 회원국의 통화를 사용한다면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달러화의 가치 또한 변동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테헤란대 부총장인 모하마드 마란디 교수는 GT와 인터뷰에서 “미국이 달러를 사용해 다른 국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으로부터 덜 취약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달러화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선의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릭스=비민주’ 우려에 “이념은 고려 안했다”

브릭스 회원국의 구성이 비민주적인 국가들로 채워지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브릭스 기존 회원국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새로 가입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이란 등 중동 국가들은 서방국과 대척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이날 칼럼을 통해 “신규 회원국 명단을 보면 가입 기준에 민주주의에 대한 고려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선진국인 주요 7개국(G7)에 대한 전략적 균형체로 설계된 브릭스는 신흥 시장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동안 비민주주의 국가라도 수익만 거둘 수 있다면 투자자들의 수요가 있었지만 최근 분위기는 다소 바뀌었다. 지난 10여년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채권 발행이나 펀드 운용 등이 많아지면서 투자에서도 윤리, 환경 같은 가치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민주주의는 거버넌스 고려사항에 포함될 수 있다”며 “채권 투자자들은 투자하고자 하는 국가의 기업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가 독재 정부에 자금을 지원하는지 여부가 투자 전 고려 사항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우려와 관련해 룰라 대통령은 최근 “신규 회원국 정부의 이념적 사고에 대해선 알고 싶지 않다. 이미 수년간 (가입을) 대기하고 있던 국가들이었다”며 이번 확장이 회원국의 이념을 고려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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