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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월가의 한 대형 투자자문사에서 채권 어드바이저로 일하는 A씨. 팬데믹 이후 1년 넘게 재택근무를 했던 그는 최근 주 2회 사무실 출근을 시작했다. 뉴저지 테너플라이에서 뉴욕 맨해튼까지 대중교통으로 족히 2시간은 걸린다. 출퇴근 길을 보면 팬데믹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갔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런 A씨가 내심 불안한 게 있다. 인도발(發) 코로나19 델타 변이의 확산이 예상보다 빠르다는 소식이다. A씨는 “요즘 맨해튼에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며 “백신 접종만으로 델타 변이를 예방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실제 요즘 맨해튼을 비롯한 뉴욕 일대는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다. 기자가 23일(현지시간) 센트럴파크, 브라이언트파크, 배터리파크 등 맨해튼 일대를 둘러보니, 관광객으로 보이는 몇몇을 빼면 실외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다녔다. 로어 맨해튼에서 만난 앤드루씨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오히려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한 달 후 델타 변이 지배종 될 것”
이제 막 마스크를 벗기 시작한 미국이 델타 변이 변수를 만났다. 미국이 방역 조치를 사실상 모두 해제한 데다 전염력이 다른 변이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에서 또 팬데믹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이날 NBC와 인터뷰에서 “한달여가 지나면 델타 변이가 지배적인 종(種)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10월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델타 변이는 기존 영국발 알파 변이보다 전염력이 60% 더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우치 소장은 “델타 변이가 두 배로 증가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주”라며 “현재 미국 내 신규 감염자 중 델타 변이 비중은 약 20%”라고 설명했다. 두 배로 늘어나는 시간을 감안할 경우 한달여 뒤면 상당히 지배적인 종이 될 것이라는 게 파우치 소장의 전망이다. 이는 최근 로셸 월런스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소장이 예상한 시점보다 빠른 것이다. 월런스키 소장은 “델타 변이는 몇 달 뒤 지배적인 종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파우치 소장은 이날 CBS에도 나와 “특히 백신 접종률이 낮은 지역에서 델타 변이가 퍼질 것”이라며 “빨리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CNN에 따르면 델타 변이는 미국 수도 워싱턴DC와 49개주에서 모두 발견됐다.
델타 변이가 팬데믹을 재연할 것이라는 연구는 적지 않게 나와 있다. 존스홉킨스대의 전염병 연구자인 저스틴 레슬러 박사의 분석을 보면, 미국인의 75%가 백신을 접종한 와중에 델타 변이가 퍼진다고 가정했을 때 올해 가을과 겨울 미국에서 매주 3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추정됐다.
무엇보다 우려가 커지는 건 해외의 전파 속도 때문이다. ‘백신 접종 모범국’ 이스라엘은 백신 접종 외국인 관광객의 자가 격리 면제 계획을 연기했다. 다음달 1일 시행하려다 한달을 미뤘다. 이스라엘 정부는 최근 늘어난 감염의 70%는 델타 변이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대부분은 입국자의 격리 의무 위반 과정에서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 격리 면제 계획 한달 연기
유럽은 이미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는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과 유럽경제지역(EEA)의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 유럽 30개국 내 델타 변이 확산 영향 평가 결과, 오는 8월 말까지 코로나19 델타 변이가 EU 내 신규 감염의 90%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날 밝혔다.
ECDC는 “델타 변이에 의한 감염이 8월 초까지 신규 확진의 70%, 8월 말에는 90%에 달할 것”이라며 “빨리 백신을 접종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안드레아 아몬 ECDC 국장은 “델타 변이가 여름 동안 널리 퍼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영국은 델타 변이의 위력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잉글랜드 공중보건국(PHE)에 따르면 델타 변이보다 전염력이 더 큰 델타 플러스가 이날 41건 확인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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