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이 떠났어요" 지방 법대 로스쿨 재앙

한국일보 기자I 2007.09.11 20:21:49
[한국일보 제공] “개강 첫 시간에 교재까지 구입하라고 한 교수님이 타 대학으로 가다니 이런 황당한 일이 있습니까.”

영남의 A대학 법학과는 개강 후 2주 동안 수업파행을 겪었다. 8월 말 개강을 전후해 갑자기 11명의 교수가 타 대학으로 이직했기 때문이다. 학과 교수의 절반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이 교수들이 맡기로 했던 수업은 폐강되거나 다른 교수에게 넘어가면서 학생들은 큰 혼란을 겪었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을 앞두고 법대 교수들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먹이사슬처럼 ‘지방중하위권대→지방상위권대→수도권대’의 경로로 지방대 교수들이 수도권으로 대거 흡수되면서 지방의 중하위권 법대들은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충청권의 B대 법학과는 1학기에 교수 2명이 이직한데 이어 2학기에도 또다시 2명이 서울시립대 등으로 옮겼다. 신규교수 1명을 충원했지만 올해 8명이던 교수가 5명으로 줄자 총장이 직접 학과회의까지 주재했다.

이 학교 교수채용담당자는 “대학마다 자기 교수를 지키고 타 대학 교수를 빼내오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며 “이 때문에 총장들끼리, 법대 학장들끼리 낯을 붉히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C국립대는 이번 학기에 3명의 교수가 성균관대 중앙대 등으로 이직했다. 특히 이들은 지난해 공들여 뽑은 법조인 출신들이어서 충격은 더 컸다. 이 학교 관계자는 “로스쿨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실무경력자를 영입했는데 1년 만에 떠나니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지방대 교수들의 엑소더스에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 호남의 D대학은 교수 3명이 이직하는 바람에 5개 과목을 폐강하거나 시간강사 등에게 맡겼다. 한 복학생은 “교수 부족으로 합반이 되면서 콩나물 교실이 되고, 강사 변경으로 수업의 질도 떨어졌다”며 “사전통보도 없이 갑자기 떠나는 것은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이직 교수들을 질타했다.

일각에서 이 같은 사태를 지방대 공멸의 위기로 인식하고 서로 교수들을 빼가지 않도록 신사협정을 체결하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지방대 중에도 로스쿨을 준비하는 대학은 수도권에 빼앗긴 교수진을 타 대학 교수들로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김병태 영산대 법대 학장은 “부작용을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며 “교수 스카우트의 진원지인 수도권대학은 로스쿨 정원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하고, 정부는 지방 균형발전 차원에서 지방대의 로스쿨 설치를 정책적으로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경수 충남대 법대 학장은 “로스쿨로 전환하지 못하는 법대는 로스쿨 예비과정이나 법무보조자 양성 등 틈새시장을 공략하겠지만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도 “교원의 임용이라는 것이 개별적인 자유계약이기 때문에 우리가 교수들의 연쇄이동을 규제하거나 강제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로스쿨을 신청하지 않는 지방대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 등의 특별한 대책도 검토 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28일 발효되는 로스쿨 관련법에 따라 10월 중 대학들의 신청을 받은 뒤 내년 3월 예비선정, 10월 최종인가할 계획이다. 전국 97개 법대 가운데 로스쿨 신청 의사를 밝힌 대학은 국공립 12개, 사립 28개 등 40개 대학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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