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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뿐만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대한민국이 강세를 보이는 양궁 같은 경우 56개 참가국 중 한국인 지도자가 가르치는 팀이 우리나라 외에 8개국이나 된다. 이밖에도 중국 유도 대표팀을 이끈 정훈 감독이나, 필리핀 탁구 대표팀 권미숙 감독, 일본 배드민턴팀 박주봉 감독 등 16개국 18명의 한국인 지도자들이 각 나라 대표팀을 이끌고 이번 올림픽에 참여했다.
이런 한국 지도자들의 활약은 단순히 올림픽 성적을 떠나 그 나라에 희망과 용기를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사격 10m에서 베트남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건 호앙 쑤안 빈은 베트남 국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다. 특히 국력이 약한 나라에 있어 금메달은 스포츠의 승리를 넘어 국가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해외 선수들을 가르쳐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는 것은 또 다른 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단지 스포츠 기술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을 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도 8단인 필자는 중학교 시절 유도를 시작해 유도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했고, 군대 전역 후 1977년에 낯선 남미로 건너가 볼리비아 유도 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당시만 해도 열악했던 볼리비아의 스포츠 환경 속에서, 각종 국제유도대회에 수많은 메달을 따도록 제자들을 가르치고 한국 유도를 전파하는데 힘썼다. 그러면서 유도라는 스포츠를 통해 볼리비아 국민들이 희망과 기쁨을 누리는 순간을 함께 하였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나, 얼마 전 볼리비아 올림픽 위원장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볼리비아 올림픽위원회 스포츠 대사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올림픽 위원장은 34년 전 필자가 볼리비아에서 유도를 가르쳤던 제자였다. 그 친구가 훌륭하게 성장해 그 나라의 올림픽 조직위원장이 되었고, 정말 고맙게도 과거의 선생님을 찾아준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친구는 볼리비아 체육계에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된 후로, 늘 한국 유도를 지지해왔고, 한국인이 국제유도연맹(IJF) 회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물심양면 도왔다고 한다.
34년 전에 맺었던 나와의 짧은 인연 때문에 그 제자가 평생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감동스러웠다. 그 친구에게 나는 단지 유도 기술을 전수해준 코치가 아니라, 머나먼 자기 나라까지 와서 어린 자신과 민족들에게 희망을 전해준 은인이었고, 대한민국은 마음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진종오와 함께 시상대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건 호앙 쑤안 빈 역시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오른손을 가슴에 얹어 경례를 했다. 스승의 나라, 한국에 대한 감사와 경외감에서 우러난 진심어린 행동이었다. 비록 한국의 진종오에게 패했지만, 그는 패배의 아픔보다 한국인 선수와 함께 그 시상대에 설 수 있었다는 고마움이 더 컸던 것이 아닐까?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 지도자들은 자신이 키운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 선수와 맞붙게 되었을 때 곤혹스러워하고, 행여 자신의 제자들이 더 좋은 성적을 내기라도 하면, 죄인 마냥 고개를 들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기의 승패를 떠나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하고, 세계인들의 마음에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키우는 일이라는데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생계를 위해, 혹은 성공을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하더라도 한국인의 피를 가진 이상,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신이 하는 일은 한국의 성취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인 지도자로 한국을 떠난 지 34년, 스물여섯 살 때 볼리비아로 떠난 후 줄곧 남미와 미국에서 살아온 필자는 2013년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고, 36년 만에 다시 ‘한국인’이 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인재영입 케이스에 통과된 덕분이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지도자들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언제나 마음속에는 한국을 품고 있을 것이다. 한낱 개인의 삶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이는 분명 조국을 빛내고 조국에 공헌하는 길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