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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일 오전 tbs교통방송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인터뷰를 가졌다. 도 장관은 이날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나온 잡음에 대해 해명하고,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협상 과정 등을 설명했다.
도 장관은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나온 젊은 층의 반발에 대해서 “타당성이 있는 문제 제기라고 생각하고, 충분히 답변을 못 드린 것에 대해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도 장관은 협상 과정에서 보도되지 않았던 내용들을 전하며 우리 측의 노력이 있었다고 항변했다.
도 장관은 “스위스 로잔에서 벌인 IOC와의 협상에서 IOC 측이 북한 선수 12명을 받고, 게임 엔트리에는 5명을 넣으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엔트리 5명 포함이 북한이나 우리 측의 요구가 아니라 IOC 측의 요구였다는 설명이다.
도 장관은 “IOC에서 세게 요구를 했기 때문에 정회를 하고 선수들 입장을 물어보았고, 논의를 계속하고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우리 아이스하키협회에서는 잠을 안 자고 새벽까지 계속 우리와 논의를 해 주셨다”고 밝혔다.
또 “우리 감독이 3명 정도까지는 받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고 하는 사이에서 정회를 거듭하니까 중재안이 나온 게 4명이었다. 저는 그것도 안 된다고 했다. 단일팀을 못 하는 한이 있어도 우리 의견을 지켜 줘야 한다고 버텼다”며, 한국 대표팀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도 장관은 IOC 측에서 적극적으로 남북협력을 지원한 배경도 설명했다. 그는 “IOC 입장에서는 한 달 전만 해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며, “올림픽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남북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면 본래 올림픽이 추구하는 가치가 실현되는 올림픽이 될 수 있다고 (IOC가) 생각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 장관은 논란이 된 한반도기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도 장관은 “한반도기를 처음 든 것은 1991년인데 남북이 합의해서 든 게 아니라 IOC 요구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1947년 IOC 가입 신청 직후 전쟁이 나면서, 이후 IOC가 남북 개별 가입을 거부했고 1963년 위원장이 한반도기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후 남북은 1991년 처음 한반도기를 사용했고 모두 9번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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