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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세’ 우크라 곡물에 풍년까지 겹쳐 공급 과잉
16일(현지시간) 로이터 등에 따르면 헝가리 농업부는 이날 곡물과 유지종자(해바라기·유채 등 기름을 짜기 위한 씨앗) 등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입을 오는 6월 30일까지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폴란드 농업부 역시 전날 곡물과 육류, 달걀, 유제품 등 수십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산 농식품 수입을 6월 말까지 중단하기로 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산 농식품이 폴란드를 경유해 제3국으로 수출되는 것까지 차단했다. 야보르 게체프 불가리아 농업부 장관은 불가리아도 유사한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현지 BTA 통신사에 말했다.
동유럽 국가들이 잇따라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에 빗장을 거는 건 자국 농민들이 우크라이나의 저가 농산물이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러시아가 세계적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EU는 역내 식량 공급망과 우크라이나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에 무관세 조치를 내렸다. 이후 러시아가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을 일부 허용하긴 했지만, 안전한 육로를 이용한 수출도 계속됐다. 우크라이나의 농산물 수출은 열악한 교통망 때문에 서유럽보다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유럽 국가에 집중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동유럽에 풍년이 들면서 공급 과잉 현상이 발생했다. 1년 전 1톤에 1500즈워티(약 46만원)하던 폴란드 곡물 시세는 최근 750즈워티(약 23만원)로 반토막났다. 이에 폴란드와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지난달 EU에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에 대한 무관세 조치를 재검토해달라고 촉구했다.
루마니아에서 밀 농사를 짓는 알렉산드루 바시우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지난해 수확한 밀이 아직도 남아 있다”며 “아직도 3개월치 물량이 남았는데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유입 때문에 지난해 수확한 작물을 팔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EU “일방적 조치 용납 못해” 반발…보조금 ‘당근’도
EU와 우크라이나는 수입 금지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미리암 가르시아 페러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무역정책은 EU의 독점적 권한이므로 일방적인 조치를 용납할 수 없다”며 “어려운 시기엔 EU 내에서 모든 결정을 조정·조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농업·식품부도 “폴란드 농민이 어려운 상황에 있는 건 이해하지만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건 우크라이나 농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바”라고 밝혔다. EU는 동유럽 국가를 달래기 위해 5630만유로(약 809억원) 규모 보조금을 제안했지만 아직 수용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을 둘러싼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전 세계 식량 시장은 다시 불확실성에 빠질 위험이 크다. 러시아가 흑해 항구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육로 수출 통로는 여전히 중요하다. 러시아는 서방이 자국산 농산물과 비료에 대한 수출 규제를 풀지 않으면 다음 달부터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출 협정(흑해 곡물 이니셔티브)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지난주 예고했다. 이외에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적이었던 동유럽 국가들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정치적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