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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난 이 책의 번역자라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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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자I 2006.10.16 20: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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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대리번역 ''고백'' 두번째... 저술가 겸 번역가 이윤섭씨

[오마이뉴스 제공] <오마이뉴스>가 <마시멜로 이야기>의 대리번역 의혹을 최초로 제기하면서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해온 번역출판계의 '대리번역'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다음은 한국사 관련 저술가이자 8년차 번역가인 이윤섭씨가 보내온 글이다. 몇차례에 걸쳐 대리번역 작업에 동참한 바 있는 이씨는 번역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법령 제정 등 실질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쉽지만 깊이 읽는 한국사>(삼국시대편)와 <천하의 중심 고구려>, <역동적 고려사> 등의 저서와, <오사마 빈 라덴>과 <베이루트에서 에루살렘까지>, <대중의 미망과 광기>, <시계는 평평하다> 등의 번역서가 있다. <편집자 주>

나는 전문 번역자는 아니다. 그러나 상당히 알려진 책들의 번역자, 또는 공역자로 이름이 나왔고, 그 과정에서 출판계의 숱한 문제점을 보아 왔다. 개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여 묻어 두고 있었다. 대리번역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지금 내가 겪었던 일들을 공개하여 문제 개선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뜻에서 이 글을 쓴다.

내가 번역자로 처음 이름을 달게 된 책은 2001년 10월에 나온 명상출판사의 <오사마 빈 라덴>이다. 9·11 테러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이 누구냐' 하는 대중의 호기심이 엄청나던 때였다. 그래서 제일 먼저 그에 관한 책을 출판하면 상당한 정도의 판매가 보장되었고 잘하면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었다.

9·11 테러가 난 직후 이 출판사에서는 미국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한 요세프 보단스키가 쓴 <오사마 빈 라덴>을 신속히 번역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총 11장인 내용을 번역자 11명에 맡겨 10일 안에 번역하고 2일 만에 교정을 끝내고 나머지 후속작업을 벌여 15일 만에 출간할 계획을 세웠다.

출판사는 원고를 거의 다 맡긴 상태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에게 한 장의 번역을 맡기고 나머지 번역 원고를 감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번역자는 나 이외에 한 사람을 정해 두 사람의 공역으로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추석에도 쉬지 않고 내가 맡은 부분을 번역하였다. 원서는 일종의 테러사건 수사기록에 가까운 것으로 내용이 지루하여 진지하거나 참을성 있는 독자가 아니라면 다 읽기 힘든 책이었다. 게다가 저자의 중동에 대한 이해가, 대부분의 미국인이 그러하듯이 천박했다. 한 마디로 독자에게 권할 만한 책은 아니었다.

그 다음에는 나머지 번역된 원고를 원서와 대조하였는데, 시간에 쫓기면서 2일 동안 출판사에서 밤을 새워 원고를 수정했다. 그런데 번역자들이 자신이 번역자로 이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인지 성의 없이 번역한 원고가 많았다.

번역에는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번역자들이 중동 역사나 시사에 지식이 모자라는 점이 번역에 그대로 드러났다. 워낙 짧은 시간에 번역한 원고들이라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번역 원고가 있었다. 

번역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원서와 대조하지 않고 번역문만 보아도 대개 알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제대로 된 번역은 문맥이 매끄럽고 이해가 잘 된다. 오역이 많으면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많고 전체적으로 글이 매끄럽지 못한 법이다. 그러나 이 상식은 대단히 잘못된 것임을 곧 깨닫게 되었다.

한 일간지의 외신부장을 지냈고, 번역한 책만 5권에 이르는 한 번역자의 원고는 군더더기가 없고 유려하여 거의 손을 볼 필요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원서와 대조해 보니 첫 문장부터 엉망이었다. 문장마다 고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엉터리 번역에 질려서 출판사 직원들에게 '이 사람은 영한 자동번역기로 번역한 다음에 문장을 다듬은 것 같다'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도대체 얼마나 오역이 심한지 알아보기 위해 전부 원서와 대조하기로 했다. 그 문장은 "오사마 빈 라덴이 점령지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원서 문장은 "Osama was preoccupied with…"였다, 알다시피 'be preoccupied with∼'는 '∼ 생각에 사로잡히다'라는 뜻이다. 가공할 오역, 아니 작문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문장이 앞뒤 번역 문장과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렸다는 것이다. 번역하다가 한 문장을 오역하게 되면 앞 뒤 문장과 문맥이 맞지 않으므로 번역자가 오역했다는 것을 깨닫고 수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는 잘 어울렸다. 전부 소설이었던 것이다. 한 문장도 남기지 않고 모두 수정했다.

책을 내는데 또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으니 몇 페이지가 빠진 상태에서 인쇄에 들어간 것이다. 시간이 없어 그 부분이 들어간 장을 통째로 제외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책은 졸속 기획하여 시간에 쫓겨 내면 절대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역자로 나오게 되니 걱정이 앞섰다. 날림 졸속 번역이라는 평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제일착으로 나오니 주요 일간지들이 크게 다루었는데, 가장 먼저 보도한 <문화일보>의 서평에서 빠른 시간 안에 번역한 것치고는 번역이 괜찮다라는 평에 안도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이 책을 번역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두 번째 번역은 2003년 창해출판사에서 나온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였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저자로 한국에 널리 알려진 토마스 프리드만의 출세작으로, 원서는 1989년 발간되었는데 이상하게도 한국에는 늦게 번역되었다.

나는 1998년 외국어대 이란어과에 3학년으로 편입하여 1학기를 다닌 적이 있다. 그 때문에 외국어대의 여러 교수들과 박사들을 알게 되었다. 모 교수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중동에 관한 책을 번역해 달라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였다. 계약 조건을 말하더니 반씩 나누어 번역하자고 제안했다.

용돈이 필요하던 나는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원서를 받기 위해 학교로 찾아갔다. 모 교수는 그 사이에 출판사 직원과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을 받았다. 교수실로 들어가니 내가 수락하지 않았다면 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계약금 절반을 준 다음에서야 전부 번역하라고 했다.

출판사에 같이 번역할 사람이 있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출판사는 공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데 내가 전부 번역하고 공역자로 나오지 않는다면 대리번역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역자로 나와도 실제로는 공역이 아니므로 문제였다('50% 대리번역'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

계약 조건도 문제였다. 계약금에 인세 3∼4% 정도였는데 한국에서 중동에 관해 나온 책은 2쇄를 찍기가 힘든 것을 고려하여 1쇄로 끝난다면 번역자에게 들어오는 금액은 300만원 정도였다. 이를 반씩 나누면 150만원 정도이고 원고지로 계산하면 원고지 1매당 500원 꼴이다. 보통 영어 번역이 원고지 1매당 2500~3000원 수준이라는 점을 헤아릴 때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결국 번역하다가 짜증이 나서 출판사에 연락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출판사는 <동아일보>에 실린 그 교수의 칼럼을 보고는 역자로 결정했다고 말했다(한국의 출판사들은 대개 교수 등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고 지위가 없는 번역자들은 천시한다).

교수들이 대리번역을 잘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번역할 시간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교수는 안식년이어서 시간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교수가 안식년에 더 노는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번역을 포기할까 하다가 모 교수가 반은 다른 애들에게 부탁하겠다고 하였다.

그 다른 애들 4명도 각양각색이었다. 다 졸업생들이었는데 한 명은 박사(나중에 이란어과 교수로 채용됨), 둘은 외국어대 영어과 졸업생으로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외대 졸업생으로 서울대 언어학과 석사 과정에 있었다.

나중에 교수가 된 아무개 박사가 번역한 문장 중에는 '해군이 후퇴하였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육군도 아닌 해군이 후퇴한다는 말은 있을 수가 없다.

원문은 'withdrawal of marine'으로 '해병대의 철수'라는 뜻이다. 해군은 navy, 해병대는 marine인데 그리 어려운 영어단어가 아니다. 동사 'withdraw'는 '후퇴하다, 철수하다, (예금을) 인출하다' 등의 뜻이 있는데 역시 어려운 단어는 아니다(그런데 이 박사는 나중에 촘스키의 한 저서를 2권으로 번역했다).

우여곡절 끝에 번역서가 공역으로 출간되었는데 주요 일간지들이 서평에서 크게 다루어 주었다. 그러나 이 책도 내가 번역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이다.

또 한 번은 나도 출판사도 교수에게 사기를 당해서 결국은 대리 번역이 되었다. 번역자는 곽아무개 교수(경영학)로 나왔다.

그는 출판사에 자신이 번역한 책이라면서 대학 교재로 쓸 것이기 때문에 초판을 다 사겠다는 조건으로 출판을 요청했다. 출판사는 속아서 나에게 감수를 부탁했다. "교수님이 영어는 잘 하시는데 외국에 오래 살다 와서 한국어가 어색하니 문장을 좀 봐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번역한 원고는 오역투성이에다가 이름, 지명 등 고유명사마저 틀렸다. 글자 크기마저 달랐고, 번역을 빠트린 구절도 종종 있었다.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번역한 것을 한 번도 검토해보지 않고 그대로 출판사에 넘긴 것이다.

여기에 대한 그의 변명이 더 기가 막혔다. 출판사가 전해준 말로는 자신이 번역했는데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어색한 표현을 잡아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제각각 수정해서 그리 되었다는 것이다.

3월 전에 나와야 교재로 쓸 수가 있었다. 그래서 2월 하순에 번역을 맡은 나는 3월 초까지 번역과 감수를 끝내야 했다. 진탕 고생해서 그 교수에게 받은 것은 번역료와 감수료를 다 합해서 고작 200만원이었다. 

번역 과정을 볼 때 곽 교수가 번역자로 나온 그 책은 결코 좋은 번역이 아니다. 그래도 양호한(?) 번역에 속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책은 저술이든 번역이든 그것이 출간되기까지 과정이 복잡하다. 또 원고만 좋으면 좋은 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편집부에서 오자 정도나 바로잡고 그대로 낼 수 있는 수준의 원고는 저술이든 번역이든 매우 드물다. 저자가 오랜 노력 끝에 열심히 연구하여 쓴 원고는 약간의 보완만 하고 그대로 낼 수 있으나 이런 원고는 한국의 학문 풍토상 적을 수밖에 없다.

적은 원고료에 빨리 하라고 독촉을 받는 번역인 경우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시간을 넉넉히 주고 원고료를 지금보다 최소한 2배 이상 주어야 번역의 질이 나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는데 현재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번역자는 하나도 없다.

보통 출판사 편집부가 보기에는 문제투성이 원고가 들어온다. 오자 정도가 아닌 오류를 잡아주기에는 역량이 미치지 못한다. 생각해 보라. 의학 전문 분야 책 원고일 경우 저술이든 번역이든 의사도 아닌 편집부 직원들이 어떻게 그 오류를 알 수 있겠는가. 역사 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대기업 형태로 많은 전문 인력을 보유한 미국이나 유럽 출판사와 달리 영세한 한국 출판사가 발간하는 책은 그 질이 좋기가 어렵다. 전문 출판사의 책이 상대적으로 믿을 만하고 이것저것 잡다하게 내는 종합출판사의 책은 더 문제가 많다.

한국의 대형출판사도 미국이나 유럽 출판사에 비하면 턱없이 영세하다. 일단 들어온 원고는 편집부가 손을 보는 경우도 있고 외부에 맡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손을 본다는 것'이 대단히 애매한 말이다. 번역의 경우 원서와 대조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를 하지 않고(하지 않는 경우보다는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강 글만 매끄럽게 고쳐 내기도 한다.

원서와 대조할 경우 일부 오역만 고칠 수도 있지만 거의 재번역이라 할 정도로 손을 많이 보는 경우도 있다. 이 손을 잘 보느냐 못 보느냐에 따라 책의 질이 결정된다.

또 잘한 번역이라 하더라도 번역자의 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명도가 높은 사람이 실제로 번역을 했지만 편집 과정에서 재번역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손을 많이 본 번역서도 대리번역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번역만 놓고 출판계를 말하면 출판사와 번역자, 독자 모두에게 문제가 있다. 특히 독자들이 얄팍한 속임수에 잘 넘어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독자들은 변별력이 없어 이벤트나 허명에 넘어가기 쉽다. 한국에서는 허명이 높은 것이 부채가 아니라 엄청난 자산이 된다.

문제해결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당장 실천 가능성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그만 두고, 한 가지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한국의 출판계에서는 계약서 작성을 잘 하지 않고 구두 약속이 보통이다. 그 이유는 따질 필요가 없는데, 이 때문에 수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피해는 거의 전부 번역자 감수자가 입는다. 그러나 번역자는 계약서 작성을 요구하기 어렵다.

번역 감수를 의뢰할 때 반드시 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법령을 만들고 위반할 경우에는 벌금을 부과하는 등 처벌하는 규정을 만들면 계약서는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이를 문화관광부 등 공공기관에서 한 통 보관하는 것을 의무화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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