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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훈의 신약개발 서랍장④]“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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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미 기자I 2026.09.30 0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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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훈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글로벌규제컨설팅사업단 단장 (사진=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장성훈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글로벌규제컨설팅사업단 단장 (사진=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장성훈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글로벌규제컨설팅사업단 단장] 나는 프로야구를 좋아한다. 미국에서 살았던 30년 동안에도 LG 트윈스 팬으로 KBO리그 경기를 꾸준히 챙겨봤다. 2023년 LG가 2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는 멀리서나마 진심으로 기뻐했다.

야구에는 명언이 많다. 가장 유명한 말은 아마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일 것이다. 야구를 넘어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도 등장할 만큼 널리 알려진 표현이다. 야구팬에게는 익숙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조금 생소한 말도 있다.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

왼손으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그만큼 희소하고 가치가 높다는 뜻이다. 좋은 우완 투수는 찾을 수 있어도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 투수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그런 선수가 있다면 어디에 있든, 어떤 수고를 들이든 데려와야 한다는 말이다.

인공지능(AI)이 수많은 일을 대신하는 세상이 됐다. 방대한 자료를 순식간에 찾아주고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하며 보고서와 규제문서의 초안도 만들어준다. 그럼에도 나는 중요한 일에는 결국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구시대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신약개발은 더욱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신약개발은 새로운 후보물질을 발견하는 연구만을 뜻하지 않는다. 발견한 가능성을 실제 의약품으로 만들기 위해 비임상시험과 임상시험을 설계하고, 적절한 용량을 결정하고, 일관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고, 규제기관이 신뢰할 수 있는 증거를 만들어내는 전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는 정답이 분명하지 않은 문제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지금 가진 자료로 다음 단계에 진입해도 되는가? 추가시험을 해야 하는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과학적 근거를 들어 다른 방법을 제안해야 하는가? 일정과 비용, 과학적 완성도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AI는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할지, 그 선택의 결과를 누가 책임질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신약개발 회사에서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각 전문 분야에 한 명의 전문가밖에 둘 수 없는 작은 바이오텍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형 제약회사에는 비임상, 임상약리, 임상개발, 통계, 제조·품질, 규제업무마다 여러 명의 전문가가 있다. 한 사람이 부족해도 다른 사람이 보완할 수 있고 중요한 결정은 여러 단계 검토를 거친다.

작은 바이오텍은 사정이 다르다. 각 분야의 전문인력(SME·Subject Matter Expert)이 한 명뿐인 경우가 많다. 그 한 사람이 회사의 전략을 세우고 외부 업체 업무를 검토하며 규제기관 질문에 답해야 한다. 때로는 회사 안에서 그 사람의 판단을 전문적으로 검증해 줄 동료조차 없다.

이런 조직에서는 한 사람이 두세 명의 몫을 하는 정도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열 명이 모여도 하지 못할 일을 해낸다. 반대로 핵심 자리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앉으면 그 한 사람 때문에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개발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나는 HLB(028300) 미국 자회사 엘레바 테라퓨틱스(Elevar Therapeutics)에서 이러한 차이를 직접 경험했다. 회사에 필요한 비임상과 임상약리 전문가를 찾으면서 FDA에서 함께 일했거나 전문성을 직접 알고 있던 심사관 출신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규제업무를 이끌 사람을 찾을 때는 더욱 신중했다.

경험만 많은 사람도, 에너지만 넘치는 사람도 충분하지 않았다. 복잡한 문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경험과 끝까지 일을 밀고 나갈 추진력을 함께 갖춘 사람이 필요했다.

소개를 통해 한 사람을 알게 됐다. 처음 몇 차례 대화를 나누면서부터 엘레바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짧고 명확했다. 경험하지 않은 일은 해보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 솔직함 뒤에는 해보지 않은 일이라도 배우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간결한 이력서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의 배짱이 느껴졌다.

‘바로 이 사람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을 알아봤다고 바로 영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게도 경력과 생활, 가족을 고려한 계획이 있다. 나는 1년 반 가까이 기다리며 수시로 연락했다. 회사가 왜 이 사람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일을 함께할 수 있는지를 계속 설명했다. 그렇게 기다린 끝에 마침내 영입에 성공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새로 온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맡는 데 대한 경계였을 수도 있고, 그 영입을 강하게 추진한 나의 판단에 대한 의심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선이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리보세라닙’ 신약허가신청서(NDA) 재제출부터 ‘리라푸그라티닙’ NDA 제출, 제출 후 FDA와 소통을 거쳐 최종 승인을 받기까지 그 사람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복잡한 문제의 핵심을 찾아냈고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여러 부서와 외부 전문가 의견을 하나의 규제전략으로 모았다.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을 탓하기보다 해결 방법부터 찾았다.

한 사람이 조직 전체의 수준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한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실제로 왼손잡이다.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는 말이 괜히 떠오른 것이 아닌 모양이다.

물론 반대의 경험도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를 빨리 채워야 한다는 조급함에 서둘러 사람을 뽑았다가 입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인터뷰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한 적도 있다.

빈자리가 오래 남아 있으면 조직은 불안해진다. 다른 직원들의 업무가 늘어나고 일정도 지연된다. 그러면 우선 누군가를 앉혀놓고 보자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잘못된 사람을 핵심 자리에 앉히는 비용은 그 자리를 잠시 비워두는 비용보다 훨씬 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채용했다’는 말보다 ‘영입했다’는 말을 자주 쓴다. 채용이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는 일이라면 영입은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을 찾아 함께 일하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이력서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지원자 중 한 사람을 고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정의하고, 그 사람을 찾아가 회사의 비전과 역할을 설명해야 한다. 때로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힘들게 영입한 인재를 지키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좋은 사람을 데려온 뒤 권한은 주지 않고 책임만 지우거나 전문적인 판단보다 직급과 사내 정치가 앞선다면 오래 함께하기 어렵다. 전문가를 영입했다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권한과 신뢰를 줘야 한다. 그 사람의 의견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충분히 듣고 토론할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한다.

탁월한 인재 한 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신약개발은 어느 한 사람의 힘만으로 완성할 수 없는 팀 스포츠다. 그러나 야구에서 좋은 투수 한 명이 경기의 흐름을 바꾸듯, 제대로 된 인재 한 명은 팀 전체가 일하는 방식과 판단의 수준을 바꿀 수 있다.

특히 규제업무는 더욱 그렇다. 규제업무 전문가는 이미 만들어진 자료를 정리해 FDA에 보내는 사람이 아니다. 개발 초기부터 규제기관이 무엇을 물을지 예상하고 필요한 증거를 준비하며, 회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이를 멈춰 세울 수 있어야 한다. 허가 신청을 앞두고는 흩어진 수많은 자료와 사람을 하나의 목표로 이끌어야 한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신약개발에서 가장 비싼 투자가 반드시 임상시험이나 제조시설만은 아니다. 적합한 사람을 알아보고, 데려오고, 오래 함께하는 일도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투자다.

좌완 파이어볼러는 흔하지 않다. 그러니 정말 만났다면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그리고 오래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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