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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원가 획기적 절감' CAE가 불러올 제조업의 혁신

정재호 기자I 2015.10.21 13:52:51
김정태 한국생산기술원구원 사이버설계그룹 그룹장이 서버룸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데일리 정재호 기자] “제조기반 설계해석프로그램은 물건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없는지 또 얼마나 잘 만들어질지 등의 여부를 사전에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중소 제조 기업이 기존 제품이 아닌 새로운 제품을 수주 받고 현장에서 생산할 때 겪게 되는 시행착오를 8~90% 이상 획기적으로 줄여줍니다.”

2000년 중반 이후 일상으로 급격히 스며든 ‘스마트화 바람’이 흔히 손에 기름 때 묻는 곳으로 인식되는 제조공장에도 불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이 세계 최고수준인 독일은 2010년부터 제조업의 디지털화를 목표로 한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인더스트리 4.0은 제조업의 완전한 자동생산체계 구축과 생산 과정의 최적화가 이뤄지는 ‘4차 산업혁명’을 뜻한다. 중소·창업 기업의 주도 하에 제조업과 같은 전통 사업에 정보통신(IT) 체계를 결합해 지능형공장으로 진화하자는 것이 독일의 목표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만큼 제조업 대국인 중국도 제조업의 스마트 혁신에 발 벗고 나선 상태다. 지난 5월 중국 정부가 발표한 ‘중국 제조 2025’는 제조업 대국에서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한 가지 목표를 담고 있다. 3단계 발전 계획을 통해 2025년 제조업 강국 대열에 들고 2045년에는 제조업 강국의 선두그룹이 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한국 정부는 2020년까지 지능형(스마트)공장 1만개를 구축하겠다는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수립했다. 기계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이 만나 경쟁력을 갖출 때 손에 잡히는 창조경제 모델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기계산업은 1967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자주국방을 위한 방위산업 육성의 일환으로 ‘기계공업진흥법’이 제정된 뒤 본격 성장하기 시작했지만 이후 자동차·전기전자 등이 떨어져 나가면서 지금은 두산중공업·현대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 같은 중공업이나 공작기계 회사, 주조·열처리, 사출금형 등의 부품·소재 중소기업들이 활동한다는 점에서 제조업 혁신 3.0은 세계의 흐름에 따르고 기계산업의 새 도약을 위한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간 5~600조원 규모로 파악되는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여는 첫 걸음 중 하나로 기계산업과 ICT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제조기반 설계기술 고도화’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세계 속에서 입지를 다져온 한국의 제조업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중국 및 동남아 국가들의 추격과 대기업 주도의 산업 구조 속에서 중소기업이 제 역할을 못한 탓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으로 생산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주조, 사출, 소성, 용접, 표면처리, 구조해석, 동역학’ 등 제조기반 분야의 설계해석프로그램(CAE: Computer Aided Engineering)은 한국기계산업진흥회가 무상으로 교육·보급하고 있는 사업이다.

고가의 외산 프로그램을 구매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이나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중소기업이 지원대상이다.

보급 중인 설계해석프로그램은 인터넷 환경을 기반으로 해 여러 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인터넷과 연결만 된다면 어디서나 사용 가능한 장점이 있다.

CAE은 제품의 기획·설계 및 제조단계에서 비용, 시간, 생산방법을 고려해 최적설계를 구현하는 기반기술로 시제품을 실물로 만들지 않고도 컴퓨터에서 시제품을 가상으로 만들어 상황별 시뮬레이션을 통해 문제점(강도, 소음, 진동, 구조 등 성능)을 예측하고 대책을 수립한다.

시작품을 실제로 고쳐 만드는 수고를 덜게 돼 신제품 개발기간의 단축이나 원가절감에 도움이 된다. 이 같은 장점으로 이미 자동차, 항공·우주 분야에서는 필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자동차 분야의 경우는 신차 개발기간을 50%이상 단축하고 있을 정도로 생산성 향상에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캐드앤그래픽스’의 2015년 2월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CAE 소프트웨어 시장은 1574억원 규모이고 전 세계적으로는 3조5680억원에 이를 만큼 무시할 수 없다. 다만 국내에서 사용되는 기존 프로그램은 대부분 해외제품으로 가격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 이상의 고가다. 비용뿐 아니라 활용인력·하드웨어 등의 문제로 중소기업이 쉽게 도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이데일리는 한국 제조업의 혁신을 이끌 CAE 활성화 방안으로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함께 ‘2015 제1회 대한민국 JEJOUP(제조업) 포럼’을 연다.

오는 30일 킨텍스 제2전시장 회의실(301+302호)에서 오전 10시부터 열리는 포럼에서는 제조기반 설계기술 고도화 사업 참여 인력 및 회원사 등이 모여 CAE 최신 트렌드 및 공정관리·제조용 어플리케이션(앱) 기술·활용사례 등에 대해 토론한다.

포럼에 앞서 CAE의 현주소와 시장상황, 향후 과제 및 전반 산업에 미칠 영향 등을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 사이버설계그룹을 이끄는 김정태 그룹장을 인천 송도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연구1동에서 만나 일문일답 형식으로 자세히 들어봤다.

△ 일반에게는 생소한 CAE를 쉽게 풀어준다면

일반 공학계열의 특수한 사람이 아니면 어려워하는 경향이 많은데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라고 보면 된다. 자연현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컴퓨터상에서 미리 확인해보는 작업이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무언가를 만들 때 이게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없는지 또 얼마나 잘 만들어질지 등의 여부를 사전에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CAE의 효과와 최근 추세는

중소 제조 기업이 기존 제품이 아닌 새로운 제품을 수주 받고 현장에서 생산할 때 겪게 되는 시행착오를 8~90% 이상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컴퓨터의 발달로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적어도 10년 전부터 앞 다퉈 CAE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바로 이런 모기업에서 하청을 줄 때 아예 시뮬레이션 결과를 같이 첨부해주길 요구하는 추세로 시장이 전개되고 있다. 하청 받은 제조 기업에서는 기술적 한계와 인력 미확보로 관련 소프트웨어를 가진 엔지니어링 컨설팅 기업에 적게는 건당 5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 이상을 들여 용역을 맡기게 된다. 이런 에로사항을 돕고자 CAE를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들에게 인터넷을 기반으로 최대한 쉽고 저렴하게 CAE 제품을 공급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2009년부터 시작한 사업에 대한 시장 호응은

하청기업에서 요구가 많았다. 상당한 시장수요를 파악하고 사업을 시작했으나 솔직히 초기 호응도가 예상보다 지지부진해 당황했다. 홍보와 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공급확산에 대한 노력에 대해서 인력이나 기술이 조금 미흡했던 것 같다고 자체 진단했다. 그래서 2014년부터 웹기반 시뮬레이션 서비스 구축은 생기원에서 하고 한국기계산업진흥회(기진회)에서 보급 확산을 담당하는 것으로 사업구조를 개선해 작년을 기점으로 올해 변곡점이라고 할 만큼 호응이 나타나는 걸 확인하는 중이다.

△ 인터넷 클라우딩 기반이라 보안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

망실에 대해서는 완벽한 대응이 가능하다. 모든 인터넷 기반 사업이 마찬가지겠지만 사용자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백업 시스템을 잘 갖춰놓고 있다. 고장이 나도 하루 이전에 원 상태로 돌리는 건 충분하다.

보안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은행권 수준의 3중 보안을 거치게 한다. ‘방화벽, 방화벽 내에서의 IP 관리, 인증키’ 등이다. 사용자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웹기반 시뮬레이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선 로그인을 한 번 더 하게끔 해놓았다. 로그인을 하는 순간 3중의 보안 시스템이 작동된다. 첫 번째 로그인과 두 번째 로그인의 사용자 이름과 비밀번호는 다르게 설정할 수 있고 만에 하나 해킹에 뚫렸을 시 사용자 데이터 영역에 자신의 데이터를 남겨놓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도 사용자가 직접 선택하도록 옵션을 주고 있다.

김정태 그룹장
△ 세계 CAE 시장과 비교한 기술 수준은

보안은 세계 수준과 동일하다고 보면 될 것 같고 분야마다 편차가 존재하겠지만 기술도 세계 수준의 소프트웨어와 견주어 대략 90% 이상이라고 우리는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있다. 우리는 사용자를 최대한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어 비용 측면에서 라이센스가 상당히 중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외산이라면 100명이 동시 접속 시 100개의 라이센스가 요구된다. 그것이 우리가 100% 국산을 쓰는 이유다.

△ 시장에서 국산의 점유율을 높여나갈 대응방안은

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앞섬에도 국산이 외산과 동등하게 경쟁하지 못하는 건 성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외산의 시장선점, 하청을 주는 기업의 인식문제 때문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시장 점유율이 1위 제품이어서 라든지 기존에 쓰던 걸 그냥 그대로 선호하는 현상 등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산 성능이 외산 못지않게 좋다는 걸 꾸준하게 알려나감과 동시에 하청을 주는 모기업을 설득해나가는 작업도 병행한다. 하청기업은 모기업에서 요구하는 소프트웨어를 따라 쓸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국산이 성능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검증만 된다면 다른 소프트웨어도 인정을 해달라는 식의 설득 노력이다. 어느 정도는 그런 것들이 먹히고 있는 분위기다.

△ 향후 유료화 계획은

소프트웨어 장벽을 해소시키고 사용자 확산 차원에서 무료로 가고 있는데 마냥 무료로 할 수는 없다. 설계 성능 검증 작업이 완료되는 2단계 사업 종료 시점에 맞춰 부분 유료화를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 내년부터 시작이 목표다. 물론 시스템이 완벽히 갖춰지지 않은 분야와 아주 기초적인 것들은 계속 무료로 가고 어느 정도 구축이 완료된 분야의 고급 기능들은 유료화한다는 전략이다. 확정은 아니고 전환해나간다는 방침이다.

△ CAE 활성화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까

독일식 인더스트리 4.0이 추구하는 완전 자동화된 스마트공장이라면 오히려 생산인력이 필요 없어지게 된다. 양적 고용증가의 측면에서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CAE는 생산 효율을 지원하는 일부분이지 생산과정 전체를 바꾸는 시스템은 아니라 직접적인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창출한다고 보기 어렵기도 하다.

한국형 스마트공장은 약간 다른 개념이 될 테고 아직은 먼 미래의 얘기지만 생산파트에서 컨트롤·관리파트로 전환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부분적으로 그런 게 가능할 수는 있겠다. 인력의 고급화와 3D 인력을 줄이는 쪽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고용주의 인식이 우선적으로 바뀔 필요는 있겠다. 인건비 증가를 우려한 나머지 기존의 생산 업무를 그대로 두고 설계 업무가 추가되는 식이면 곤란하다. 애써 키운 인력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문 인력에 대한 처우개선이 뒤따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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