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기업강국)(33)대한항공과 함께 성장한 사람들

김국헌 기자I 2009.03.31 17:45:18

1만6950시간 무사고 비행한 김광희 기장
대한항공 최장 근무자 한영희 부장
3만시간 비행 도전하는 박길영 수석사무장

[이데일리 김국헌기자] "제가 입사하던 당시만 해도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의 봉급이 은행, 삼성그룹, LG그룹보다 많았습니다. 여권 하나 만들기도 어렵고 해외여행을 동경하던 시절이었죠. 당연히 대한항공 입사 경쟁이 치열했고, 객실승무원에 지원한 고학력자들이 수두룩했습니다. 당시에 남자 승무원 30명이 들어왔는데 이젠 저 하나 남았어요."
(박길영 대한항공 객실승무BU 수석사무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2일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창사 40주년 기념식에서 "40년 전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소명과 불굴의 정신으로 오늘의 대한항공이 됐다"고 회고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1969년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대한항공이란 새 사명을 달고 출범했다.
 
민항 40년 역사만큼 대한항공(003490)이 자랑하는 것은 연륜을 자랑하는 인재들.
 
지난 2일 대한항공 창사 40주년 기념식에 1만6950시간을 무사고 비행한 김광희 기장(60), 대한항공 40년 역사에서 1년 10개월만 빼고 함께 한 최장 근무자 한영희 부장(56), 하늘에서 2만9237시간 동안 승객을 모신 박길영 수석사무장(56) 등이 함께 했다.

 
◇조중훈 선대회장 ”여러분은 프로입니다”  
 
▲ 대한항공은 오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꿈의 항공기` B787 기종 10대를 들여온다. 지난 1969년 8대에 불과했던 항공기는 올해 총 130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로 정년을 두 번째 맞게 된 김광희 기장. 올해 환갑인 김 기장은 56세에 정년을 맞았지만, 기장 촉탁제도에 따라 4년 더 근무했다.

젊은 기장들도 기압차이 탓에 잦은 비행을 하면 피로해 하기 마련. 김 기장은 항공대 시절부터 40년간 조종간을 잡았던 베테랑으로 건강을 잘 유지해왔다. 총 비행시간만 약 2만3000시간에 달한다.

그는 “1989년 A300 기장을 하던 시절에 조중훈 창업회장님이 종무식에서 `여러분은 프로입니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며 “1만7000시간 가까이 무사고 비행을 한 것은 전문직업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난기류나 공항 기상 악화 같이 아찔한 순간을 만나면 더 침착해진다는 그는 30년간 서울과 뉴욕을 오갔지만 아직도 뉴욕 비행 전에 미리 머리 속으로 모의 비행을 3번 해본다고 한다.

◇"비행기는 떠있어야 돈 버는 것..격납고 텅 비어야"
 
▲ 왼쪽부터 1만6950시간 무사고 비행 기록의 김광희 기장, 2만9237시간 비행 기록의 박길영 수석사무장, 38년2개월 최장시간 근무 기록의 한영희 부장.

민항 40년 역사를 오롯이 함께 한 한영희 부장도 올해 정년을 맞았다. 정석항공고등학교 전기과를 졸업하고 지난 1971년에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당시 18세였던 그에게 위로 153명이나 되는 선배들은 정비를 맡기지 않았다. 6개월간 비행기 닦는 일만 한 끝에 간신히 정비를 배울 수 있었다. 당시에는 청기와 장수처럼 후배에게 기술을 전수하지 않는 문화가 있어서 어깨 너머로 정비기술을 배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운좋게 공군 하사관 1기 출신으로 대한항공공사 시절부터 정비를 맡았던 대선배가 그를 눈 여겨 본 덕분에 항공기 정비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한 부장은 “당시에는 항공기 격납고가 없어서 노천에서 눈이 오면 눈 맞고 비가 오면 비 맞고 정비를 해야 했지만 지금은 격납고 시설도 뛰어나게 잘돼있고 정비 교재도 잘 만들어져 기술 전수가 끊기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어린 후배들을 보면 그 선배 생각이 나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게 된다는 그는 텅 빈 격납고를 가리키며 “비행기는 떠있어야 돈 버는 건데 격납고가 빈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흐뭇해했다.

새 항공기가 나오면 국토해양부에서 새 면허를 취득해야 하지만, 40년 가까이 비행기만 들여다 본 그는 젊은 정비사들보다 빠르게 기술을 습득한다. 대한항공 정비사들이 정년 이후에도 계약직으로 촉탁을 받아 근무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실력 때문이다.

◇”9월말 3만시간 비행 기록 세울 겁니다”
 
▲ 대한항공 승무원복 변천사. 왼쪽부터 1960년대(디자이너 송옥 작품), 1970년대, 1980년대(미국 디자이너 조이스 딕슨), 1990년대(디자이너 김동순), 현재(이탈리아 디자이너 지안 프랑코 페레) 순이다.

 
 
 
 
 
 
 
 
 
 

 
 
대한항공은 1970년대나 지금이나 높은 연봉과 안정성으로 입사경쟁률이 높은 직장이다.
 
그러나 1970년대 대한항공 승무원의 근무 여건은 중고 항공기 탓에 상당히 열악했다. 대한항공공사에서 받아온 항공기들은 노후했고, 당시 달러 자금 부족으로 중고 항공기를 주로 들여오다 보니 항공기 고장이 잦았다.

남자승무원 동기 30명과 함께 입사한 박 수석사무장은 식자재를 나르는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직접 비상탈출구로 승객의 식사를 날랐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박 수석사무장은 “당시에는 서비스란 개념이 부족했다”며 “지금은 그날 탑승하는 승객의 성향을 미리 파악하고 먼저 인사드리는 인식 서비스를 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당시에는 서비스란 개념조차 부족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서비스 수준이 이렇게 발전하기까지는 현장을 찾는 경영진의 노력이 숨어있었다. 박 수석사무장은 “한번은 조중훈 창업회장님께서 타셨는데, 비행 내내 주무셨다. 그런데 내릴 때쯤 한 승무원에게 `아까 왜 샴페인 서비스할 때 린넨 사용 안했어?`라고 물으셔서 승무원들이 모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주무시는 척하고 내내 서비스를 살펴보셨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 수석사무장은 현직으로는 최장 비행시간인 3만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는 9월이면 그 목표를 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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