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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시위 5년' 전장연 대표...그도 장애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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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현 기자I 2026.08.18 07: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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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대표, 24살 추락사고 중도 장애인
"컴퓨터로 취직할랬는데 기회 無" 인생 변곡점
"지하철 시위 당초 1회성...장기화 된 이유는"
"불편 끼치는데 미안한 마음 왜 없겠나"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출근길 지하철 시위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상임대표 박경석 씨가 “불편을 끼치는 데 대해 왜 미안한 마음이 없겠냐”며 속내를 털어놨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사진=뉴시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사진=뉴시스)
박 대표는 18일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우리도 욕을 먹어가면서 지하철에 타는데 마음이 무겁다. 우리에게 욕을 해도 되지만 정부에도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한 번만이라도 같이 이야기를 해주시라. 그게 공동체 아닌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영남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박 대표는 원래부터 장애인은 아니었다. 그는 중도장애인이다. 175cm의 키에 건장한 체구였던 박 대표는 해병대 수색대에 지원해 특수부대에서 낙하산을 타고 하늘을 나는 일을 즐겼다. 그리고 24살, 1983년 그는 부암산 산 중턱에서 추락하고 만다. 행글라이딩 사고였다.

그는 다수 언론과 인터뷰에서 “5년 동안 죽지 못해서 집 구석에 쳐박혀있기만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선장이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은 5년 동안 꿈에서조차 떠올리고 싶지 않을 아픔이 됐다. 하반신 마비. 다시는 걸을 수가 없었다. 한 발짝이라도 가려면 휠체어 없이는 불가능한 삶이 24세에 찾아왔다.

5년간 칩거하던 박 대표는 1988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직업훈련 과정 전산과에 입학하면서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이것이 그의 인생에 변곡점이 됐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시청역 1호선 서울역 방면 플랫폼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시청역 1호선 서울역 방면 플랫폼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 대표는 ‘뭐라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컴퓨터 기술을 알려주고 취업 기회를 준다는 복지관에 찾아가 직업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장애인이 된 그를 채용해 주는 회사는 어디도 없었다. “컴퓨터 다루는 일은 우리나 비장애인이나 둘 다 똑같이 일을 잘할 수 있었는데 아예 취업 기회 자체가 없었다”며 이후 그는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박 대표는 1991년 당시로서는 서른한 살 늦은 나이에 숭실대에 입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1993년에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를 설립하고는 교사로 일했고, 1996년부터 교사 대표이자 교장으로 학교를 이끌었다.

박 대표가 장애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01년 서울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가 계기였다. 당시 설을 맞아 역귀성 한 장애인 노부부가 오이도역에 설치된 수직형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던 중 쇠줄이 끊어지면서 7m 아래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한 명은 중상을 입고 한 명은 사망했다. 박 대표는 2001년 장애인이동권연대를 조직하고 대표를 맡아 활동가의 길에 들어섰다.

2002년 서울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망사고가 또다시 발생하자 서울시의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39일간 단식 투쟁을 벌였다. 2007년 전장연이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대표로 있으며 장애인들의 고용문제, 혐오차별 대응, 기자회견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점거투쟁 등 장애인들의 모든 투쟁의 ‘대부’가 됐다.

서울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하철 탑승을 막는 서울교통공사 직원 및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하철 탑승을 막는 서울교통공사 직원 및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금과 같은 출근길 시위가 본격화한 건 2021년이다.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되는 시기이자 세계장애인의 날인 12월 3일에 처음으로 1박 2일 집회를 국회에서 열었고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살던 마포구 공덕동으로 이동하려던 게 계기가 됐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지속적으로 할 생각이 없었다. 다들 1박 2일 일정으로 모였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났으니 일어난 김에 아침에 가보자고 한 것”이라며 “지하철역에 들어가면서부터 경찰들이 우리를 짐짝 취급하면서 막고 때리고, 소위 개박살이 났다. 그 시간대 처음 지하철을 탄 사람도 많았고 우리는 우연히 그 시간에 탄 것인데, 우리는 너무 억울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지하철 시위는 8월 10일까지 71회 이어졌다. 지하철에 직접 타지 않는 선전전은 1120회를 넘겼다.

박 대표는 시민들에게도 협력과 연대를 당부했다. 그는 “불편을 끼친 부분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왜 없겠나. 현장에서는 막 욕을 해대는데 우리도 마음이 안 무겁겠나”면서도 “욕만 한다고 해서 우리가 멈출 수 있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를 욕해도 되는데, 우리에게 100번 욕을 한다면 그중 1번만이라도 정부에게 같이 해달라. 그동안 교육과 노동에서 배제되고 시설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를 못 본 척하고 방치했다면, 이런 기회를 통해서 시민들이 같이 나서달라. 그게 민주주의 국가이자 공동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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