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소현기자] 경기는 사이클에 따라 움직인다. 화폐가 지배하는 자본 사회로 들어서면서 경기는 확장기와 침체기를 순환적으로 겪는 패턴을 갖게 됐다.
지금은 호황이지만 언젠가는 경기는 불황기에 접어들기 마련이고 침체기라면 언젠가 회복돼 호황을 누리게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터닝 포인트를 예측할 수만 있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부자들이 경기변동을 늘 앞서간다는 말도 이 때문이다.
이 시점을 예측하기 위해 모든 경제지표를 샅샅이 뜯어보기는 것은 다소 무모한 짓이다.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다 어떤 지표를 얼마만큼 받아들여야 할 지 난감하다. 앞으로 몇달동안 경제에 일어날 일들을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컨퍼런스 보드가 발표하는 경기선행지수가 정답은 아니지만 힌트를 준다. 경기선행지수는 경기에 민감한 경제지표의 묶음으로 경기 고점이나 저점을 짚어내기에 상당히 유용하다.
◇`경기 예측하는 지표 없나`..위기 끝에 탄생
1920년대말 장기 호황을 누리던 미국 사람들은 대공황이 닥치자 일제히 혼란에 빠져들었다.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경기예측을 위한 모델을 개발할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1930년대 당시 미국 재무장관 헨리 모겐소 2세는 경기사이클 연구가인 웨슬리 미첼에게 경기회복의 신호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물었다. 미첼은 아서 번스와 함께 `경기회복 선행지수`라는 것을 만들고, 1946년 `경기사이클 측정`이란 책을 냈다.
1960년대 초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스승인 제프리 무어가 최초의 경기종합지수인 선행지표, 동행지표, 후행지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모델을 기초로 미국 상무부는 다양한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기선행지표와 동행, 후행지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컨퍼런스 보드는 반영 지표를 일부 조정하고 산출방식을 다듬어 경기선행지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컨퍼런드 보드 자체도 역사가 길다. 1916년 산업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고용불안이 생기는 등 위기에 처하자 업계 리더들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익단체도, 정치집단도 아닌 순수한 비영리 단체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이렇게 탄생한 컨퍼런스 보드는 전세계 수천명의 업계 리더들간 네트워크 역할을 했으며 산업과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과제들을 연구하면서 명성을 쌓아왔다.
◇경제전반 아우르는 10가지 지표 반영
경기선행지수는 제조업, 건축, 금융, 고용, 소비 등 경제의 각 영역을 아우른다. 컨러펀스 보드가 경기선행지수에 반영하는 지표는 10개. 이중 7개는 비금융권 지수며 나머지 3개는 금융권 지수다. 각 지표는 가중치 대로 반영된다.
일단 비금융권 지수로는 무엇이 들어가는지 살펴보자.
첫째는 고용보고서에서 발췌한 제조업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 근무시간의 증감은 기업들이 앞으로 고용을 늘릴 것인지 감원할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가중치는 19.7%다.
두번째는 주당 신규 실업수당신청건수다. 새로 실업수당을 신청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면 당연히 경기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경영환경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치지만 가중치는 2.5%로 낮다.
세번째는 제조업체들의 소비재 및 원자재 신규 주문으로 5.9%의 비중으로 반영된다. 인플레이션을 적용한 신규 주문 수치로 제조업체들이 현재 재고수준과 앞으로 소비자 수요를 어느정도 예측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네번째는 공급관리협회(ISM) 조사에서 알 수 있는 판매상들의 실적, 혹은 납품소요 기간이다. 가중치는 2.9%다. 만약 제조업체들이 물건을 배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이는 주문이 밀렸다는 의미다. 반면 배달시간이 적게 걸린다면 경기둔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섯번째는 제조업체들의 자본재 신규주문이다. 경기둔화가 예상된다면 제조업체들은 신규 설비나 공장에 대한 투자를 줄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번째, 민간주택 건축허가로 2%의 비중으로 반영된다.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민간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이는 미래 주택건설 시장의 좋은 가늠자가 된다.
일곱번째는 미시간 대학이 발표하는 소비자 기대지수로 1.9%의 가중치를 갖는다. 미래 경제와 소득에 대한 기대감이 변하면 소비패턴도 바뀌기 때문.
금융지표로는 우선 S&P500지수에 근거한 주가가 있다. 증시는 경기 터닝 포인트의 선행지표 역할을 해왔다. 주가는 미래의 수익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S&P 주가가 오르내리는 것은 경기 변동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가는 경기선행지수에 2.9% 반영된다.
실질 개념의 총통화량(M2)은 27.7%의 비중으로 반영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발표하는 통화공급 수치에는 화폐나 예금, 저축계좌, 은행 양도성 예금증서(CD)가 포함된다. M2 증가율이 인플레이션을 밑돌 경우 은행 대출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며 경기는 침체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은 10년만기 국채와 1일물 연방기금금리간 이자율 차이다. 장기와 단기 금리간 차이인 장단기 스프레드는 경기를 예측하는데 있어서 10개 요인을 가장 잘 반영하는 지표다. 때문에 가중치도 33%로 가장 높다.
보통 장기 금리는 단기 금리에 비해 높기 마련이다. 만기가 길어질 수록 채권 보유에 따른 리스크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장단기 스프레드가 확대되면서 장기금리가 단기금리와의 차이를 벌인다면 경기가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차이가 거의 없거나 역전된다면 경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뜻이다.
◇점쟁이는 아니어도..`가장 좋은 대안`
문제는 이들 10개 지표가 매달 같은 시기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늦게 나오는 지표 몇개를 기다리느라 경기선행지수 발표를 미룬다면 시의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컨퍼런스 보드는 10개 지표 가운데 늦게 나오는 3개 지표에 대해서는 예상치를 대입한다. 예상치로 대신하는 지표는 소비재 및 원자재 신규주문, 자본재 신규 주문, M2로 계산하는 개인소비 디플레이터다.
이후 실제 수치가 나오면 수정치를 발표한다. 가끔 먼저 발표했던 경기선행지수와 수정치가 상당히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기선행지수가 언제나 정확하게 경기의 터닝포인트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지난 6번의 경기침체를 겪는 동안 경기선행지수는 9번의 침체 신호를 보냈다. 1990년에서 1991년 침체는 예견하지 못했고, 1995년에는 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아직도 경기는 호황이다.
경기선행지수는 사실 경기침체보다는 경기회복을 예측하는데 더 좋은 성적을 냈다. 그래도 컨퍼런스 보드는 예측력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지수 산정 방식을 다듬어 왔다.
경기선행지표에는 `3개월 법칙`이 보편적이었다. 경기선행지표가 3개월 연속 하락했다면 이는 3~9개월 내에 경기위축기에 들어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3달 연속 상승했다면 침체기에서 졸업하고 회복기에 접어든다는 신호다.
컨퍼런스 보드는 그러나 3개월 법칙이 그다지 설득력 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방법을 다소 바꿨다. 1953년 이후 침체기에 들어서기 전 연속 하락개월이 2개월에서 20개월로 다양해졌기 때문.
이번엔 숫적 기준에서 양적 기준으로 바꿨다. 6개월동안 경기선행지수가 2% 이상 하락할 경우 침체기에 들어섰다고 보기로 한 것. 이는 경기를 예측하는데 있어서 좀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6개월은 너무 길다는 분석도 있다. 6개월 기다리는 동안에 이미 침체기에 들어서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따라서 컨퍼런스 보드 외부의 애널리스트들은 자체적인 분석기준을 마련, 경기판단에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경기선행지수가 7개월 가운데 최소 4개월 이상 하락했고 경기동행지수가 3개월 연속 떨어졌다면 경기침체 문턱에 왔다고 보는 식이다.
지난 17일에 발표된 미국 4월 경기선행지수는 137.3으로 전월 138.0보다 소폭 하락했다. 올해 1월 떨어지기 시작해 3월 반짝 반등했던 선행지수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선 것. 지난 6개월동안 지수가 하락했거나 정체됐던 달이 석달로 지난 10월부터 4월까지 경기선행지수는 0.2% 하락했다. 아직 경기침체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다.
경기선행지수는 매월 마지막날로부터 3주 후가 되는 날, 동부 표준시각 오전 10시에 발표되며 컨퍼런스 보드 홈페이지(http://www.conference-board.org/economics/bci/)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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