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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A, 北의 상처뿐인 영광인가? 美의 굴복인가?

노컷뉴스 기자I 2007.03.19 20:04:27
[노컷뉴스 제공] 미국의 북한 옥죄기가 18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물론 아직도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에 의한 제재 등 미국의 여러 가지 대북제재가 진행되고 있지만 북한 김정일 정권의 돈줄을 조이던 마카오의 방코텔타아시아(BDA) 은행의 금융제재가 19일(현지시각) 해제됐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이날 오전 베이징에서 BDA의 북한 동결자금 전액을 해제하기로 했다며 동결자금을 북한으로 돌려주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꼭 1년 6개월 만이다.

미국은 달러화 위조와 돈세탁 등 북한 정권의 불법금융활동을 차단한다는 이유를 들어 지난 2005년 9월 16일 북한의 해외 자금 창구인 마카오의 BDA에 대한 제재를 했다.

2005년 9.19 베이징 북핵 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사흘 전이다.

북한은 공동성명이 발표되자마자 경수로를 요구하며 공동성명의 실행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파들은 대북금융제재로 북한 압박을 강화했다.

이때부터 북한과 미국은 상호 비난과 한치의 양보 없는 대립전선을 구축해왔다.

북한은 기회 있을 때마다 BDA의 동결자금 2,500백만 달러의 해제 없이는 6자회담에 참가할 수 없다며 한국과 중국을 압박했고, 미국은 대북금융제재는 북핵 문제와 관계가 없는 미국의 애국법 301조를 지키는 조치라며 동결해제 고려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금융제재가 대북압살정책이라며 지난해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을 맞아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미국의 반응이 없자 10월 9일에는 급기야 핵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고 한국과 미국내 보수파들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의 중단을 요구하며 대북 강경기조가 주류를 이뤘다.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 일주일만인 10월 15일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 내용을 담고 있는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미국과 북한의 팽행선 달리리가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았으나 지난해 11월 7일 미국의 중간선거를 계기로 미국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동안 부시 행정부 대북정책을 배후에서 조종해왔던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11월 8일 물러난 것이다.

이어 네오콘의 행동대장격이었던 존 볼턴 미국의 유엔대사와 로버트 조셉 국무부 군축 담담 차관도 지난해 12월 줄사퇴했다.

여기에 부시 대통령의 선거 참패로 대북강경책의 사령탑 딕 체니 부통령의 힘도 빠졌다.

당연히 협상론자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역할이 커지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핵 문제 해결론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미 상원외교위원장과 짐 리치 전 미 하원 아태소위원장 등은 부시 행정부에게 끈질기게 북-미 양자대화를 촉구했다.

북-미 협상의 물꼬를 튼 결정적인 계기는 1월 30일 베를린에서 열린 북-미 직접대화다.

미국과 한국은 지난해 12월 23일 열린 북핵 6자회담에서 북한에게 핵 폐기와 모든 대북제재 해제와 맞바꿀 수 있는 포괄적 접근 방안을 제시했고 북한이 이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 베를린 북-미 직접대화가 이뤄진 것이다.

여기에서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BDA 해제 문제를 주로 논의했고 미국이 BDA 문제를 해결할 테니 핵을 폐기하라고 압박해 일종의 북-미 '빅딜'이 이뤄졌다.

결국 2.13 북핵 폐기의 초기 이행조치 합의문이 발표됐고 김계관 부상이 지난 3월 5일 뉴욕에서 힐 차관보와 북-미 첫 수교협상을 가졌다.

미 재무부는 국무부와 백악관의 끈질긴 설득 끝에 지난 14일 BDA의 불법활동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때만 해도 미국은 북한의 동결자금 2,500백만 달러 가운데 1,200백만 달러가량을 부분 해제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전액 해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힐 차관보는 BDA 동결자금 해제 문제가 북핵 폐기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힐 차관보는 김계관 부상이 18일 만나기를 거부하고 북한의 중국대사관에서 버티기를 하고 있을 때도 "며칠 있으면 BDA 문제를 잊어버릴 것"이라고 전액 해제의 자신감을 비췄다.

결국 18개월만에 북한의 의도대로 BDA 동결자금은 전액 북한으로 돌아가게 됐고 북한의 수뇌부는 미소를 지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종의 미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도취감에 취할 수도 있다.

겉으로만 보면 북한의 벼량끝 외교와 대미 항전전략(핵실험 등)이 성공한 듯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잃은 것이 너무도 많다.

미 재무부가 북한의 위폐 문제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고 BDA 은행과 미국의 모든 금융기관들과의 외환 거래를 막아버림으로써 북한에 대한 간접 금융제재가 지속되고 있다.

세계의 어떤 은행이 미국의 금융제재, 이른바 사실상의 사망선고에 맞서 북한과 외환 거래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 기간에 한국 등으로부터 식량원조를 받지 못했다.

미국은 외면상 북한의 금융제재 해제 버티기에 굴복한 듯이 보일 수 있지만 여전히 북한 압박 카드를 갖고 있으며 북한 정권의 약점을 소상히 파악해 버렸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고 과거로 회귀하려고만 하면 미국은 언제든지 금융제재 카드를 다시 꺼낼 수가 있게 됐다.

미국은 지금도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과 적성국 교역금지법 대상에 올려놓고 있으며 모든 사치품목에 대한 대북 금수조치를 취하고 있는 등 미국에 대한 제재의 수단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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