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다보스 포럼은 그야말로 가상자산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루나 폭락 사태 직후 한자리에 앉은 빅샷들은 가상자산을 두고 “사기” “불신” “쓰레기(junk)” 같은 날 선 언어로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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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성 큰 가상자산, 신뢰 잃어”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23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한국산 가상자산 루나와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UST을 두고 ‘피라미드 사기’라고 규정하면서 “이는 결국 허물어진다”고 말했다.
루나는 자매 코인인 UST의 가격이 개당 1달러에 고정되도록 설계된 코인이다. 이때 전통적인 스테이블 코인이 미국 달러화 같은 법정화폐를 담보로 하고 있는데, UST는 그런 담보 없이 알고리즘만으로 그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돼 있다. 테더 같은 전통적인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자는 이를 위해 교환을 위한 준비자산을 마련해두고 있지만, UST는 그렇지 않다.
실제 이달 초 UST 대량 매도 사태로 UST 가격은 1달러를 밑돌았다. 알고리즘대로라면 투자자들이 차익을 노리고 UST를 매수했어야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오히려 투매 사태가 벌어졌고 루나 가격은 더 떨어졌다.
게오르기에바는 “최근 스테이블 코인 영역에서 큰 혼란이 발생했다”며 “스테이블 코인이 자산으로 뒷받침된다면 (달러화 대비 가치가) 1대 1로 안정적이지만, 자산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20% 수익률을 제공하기로 약속한다면 그것은 피라미드 사기”라고 비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가상자산은 아무것에도 기반을 두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게오르기에바의 관측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심지어 바이든 행정부 산하 금융시장 실무그룹은 “테더 같은 전통 스테이블 코인도 가치를 상실할 위험이 있는 건 똑같다”며 대량 인출 사태를 경고했다.
게오르기에바뿐만 아니다. 프랑수아 빌르루아 드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이날 다보스포럼에서 “일부 시민들은 엄청난 변동성 때문에 가상자산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며 “신뢰할 수 있는 결제 수단이 아니다”고 말했다. 세타푸트 수티와르나루에푸트 태국 중앙은행 총재는 “가상자산은 교환 수단이 아니라 투자의 대상”이라고 했다.
◇“가상자산 시장, 닷컴버블과 비슷”
월가의 시선도 비슷했다. 월가의 주요 투자회사인 구겐하임 파트너스의 스콧 마이너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날 총회장에서 CNBC와 인터뷰를 하면서 “가상자산은 (화폐가 가져야 할) 가치저장 수단, 교환 매개, 거래 단위 가운데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며 “대부분은 화폐가 아니라 쓰레기”라고 일갈했다. 그는 현재 시장 상황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에 비유하기도 했다.
마이너드는 또 “비트코인 가격은 8000달러까지 폭락할 수 있다”며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 긴축을 고려할 때 비트코인 가격은 하락할 여지가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가상자산이 환율의 제약을 받지 않고 국경을 뛰어넘어 이뤄지는 거래를 돕는 걸 장기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게오르기에바는 “디지털머니(가상자산)는 달러화 혹은 유로화만큼 쉽게 송금할 수 있는 ‘글로벌 공공재’(global public good)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마저도 찬반 양론이 일었다. CNN은 “미국 의회와 연준은 이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며 “(다보스포럼에 나온) 패널들은 가상자산이 진화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악셀 레만 크레디트스위스(CS) 회장은 “‘실버 불렛’(silver bullet·풀기 어려운 상황을 단박에 해결하는 묘책을 이르는 말)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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