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강(사이버 강의) 링크 줘봐. 테러해 준다.”
허락 없이 화상회의 프로그램에 침입해 온라인 수업을 방해하는 이들로 대학가가 몸살을 앓고 있다. 언택트 시대 대표 화상강의 플랫폼으로 쓰이는 ‘줌(zoom)’과 폭격을 뜻하는 영어단어 ‘바밍(bombing)’을 붙인 신조어 ‘줌바밍’이다. 상당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줌바밍이 일종의 놀이 문화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
◇기승부리는 ‘줌바밍’에 대학가 ‘벌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대학 비대면 수업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줌바밍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2일 세종대 윤지선 교수의 ‘서양철학 쟁점과 토론’ 비대면 수업 중 신원미상 인물이 갑자기 들어와 욕설과 혐오 표현을 배설했다. 음란물까지 채팅창에 올리며 약 30분간 소란을 피웠다.
윤 교수는 신원미상 인물을 방에서 강제로 퇴장시켰지만, 이후 5번이나 다시 접속해 난동을 이어갔다. 결국 윤 교수는 지난 25일 모욕,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줌바밍은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는 누군가가 해당 강의 링크를 외부에 유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링크만 있으면 강의 수강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손쉽게 강의에 접속할 수 있는 것이다.
링크 유출뿐만 아니라 강의 수강자와 함께 있는 제3자를 통해 ‘테러’가 이뤄지기도 한다. 지난 24일 연세대 ‘명상 온라인 프로그램’ 비대면 수업에서는 강의 수강생인 이 대학 학생 A씨가 인도 국적의 강사에게 “난민이냐”라는 인종차별적 질문을 던졌다. A씨는 화면을 연예인 사진으로 바꿔 놓거나, 화상 카메라에 눈을 가까이 대 강의 화면에 눈만 나오게 하면서 수업을 방해하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A씨는 “야외에서 친구 2명과 함께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었고 마이크가 켜져 있는지 알지 못한 상황에서 한 친구가 교수님에게 무례한 말을 했다”며 “카메라에 눈을 가까이 댄 것도 다른 친구가 그런 것”이라고 해명했다. 강의에 초대받지 않은 옆사람이 난입해 물의를 끼쳤다는 이야기다.
줌바밍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4월 광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온라인 수업 도중 외부인이 수업에 들어와 신체 부위를 노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원도의 한 대학교에서도 신원미상의 인물이 웃통을 벗은 채 욕설을 한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기도 했다.
|
◇놀이문화로 확산하는 ‘줌바밍’…전문가 “명백한 범죄”
문제는 줌바밍이 일종의 ‘놀이 문화’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싸강 테러’, ‘싸강 링크 주면 제대로 테러해 줌’과 같은 글들이 눈에 띈다. 일종의 인터넷 라이브 방송처럼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4년제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B(22)씨는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비대면 수업을 수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인터넷 라이브 방송과는 다르게 대학 강의 등 수업에 대한 줌바밍은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된다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형법 제 314조에 따르면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력으로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뿐만 아니라 채팅을 통해 욕설이나 음란물을 올리면 관련 혐의가 추가로 적용될 수 있어 줌바밍이 중대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허윤 변호사는 “대학 캠퍼스에서 욕설을 하거나 신체노출을 하면 관련 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듯이, 온라인 강의는 공식적인 교육 업무이기 때문에 이를 방해하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라며 “욕설을 하거나 음란물을 올리면 모욕·명예훼손·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까지 적용받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장윤미 변호사는 “승인받지 않은 사람이 승인받은 것처럼 허위로 온라인 강의에 들어가게 된다면 업무방해로 처벌할 수 있다”며 “온라인 강의에 접속에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범죄가 추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