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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닥쳐도 미국 안 온다"…중동 국가들 '각자도생' 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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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훈 기자I 2026.04.27 10:06:56

사우디·파키스탄·튀르키예, 이슬라마바드서 안보 회동
파키스탄 ''핵우산''으로 시아파 이란 견제…배후엔 中
80년 美·사우디 ''석유-안보'' 묵계 한순간에 무너져
中에 한 발 걸친 사우디…부담 감수한 ‘차악’ 선택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이란 전쟁을 계기로 미국이 국제사회에 제공해 온 ‘안전 신화’가 무너지면서 중동 각국이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 역내 안보 맹주 역할을 해왔던 미국의 빈자리를 전제로 생존 전략을 새로 짜기 시작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AFP)
美·사우디 ‘안전 보장’ 묵계 무너져…의심이 확신으로

27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튀르키예 등이 참여하는 안보그룹 외교장관 회의가 지난달 말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렸다.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우산’ 아래 수니파 국가들을 결집해 시아파 이란에 맞서려는 구상이다. 사우디와 파키스탄이 지난해 한쪽에 대한 공격을 양국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상호방위협정을 맺은 것이 토대가 됐다.

주목할 대목은 이 그룹의 ‘그림자 맹주’가 중국이라는 점이다. 회의 직후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외교장관이 곧바로 중국으로 향한 것이 그 방증이다. 닛케이는 “중국은 중동 패권 다툼에서 자멸하는 미국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됐다”고 평가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사디야트섬에는 사막 한가운데 이슬람교 모스크와 기독교 교회, 유대교 시너고그가 나란히 서 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성사된 이스라엘과 일부 아랍 국가들의 관계정상화 합의인 ‘아브라함 협정’을 기념해 평화·공존의 상징으로 세워진 건축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이곳을 방문하지 않아 사실상 방치돼 있다. 닛케이는 “공허한 이상의 잔해”라고 평했다.

중동 지역에서 사망자 수가 급증한 것도 역내 국가들의 안보 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2023년 10월 가자지구 충돌 이후 팔레스타인인 7만명 이상, 이스라엘인 2000명 이상, 이란인 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이란은 혁명수비대 주도의 한층 강경한 체제로 재편됐고, 봉인됐던 갈등이 재점화하면서 강자가 규칙을 깨는 선례까지 만들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고 있지만, 아무런 비전도 없이 군사 개입을 단행하며 사태 수습은커녕 기존 질서마저 파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45년 2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은 얄타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수에즈 운하에서 사우디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를 만나, 사우디가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하는 대신 미국이 국가의 안전과 항로를 지켜주겠다는 ‘암묵적 계약’을 맺었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증오에 불을 붙여놓고 사실상 문제를 방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위기가 닥쳐도 미국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이 확신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일본 베테랑 외교관은 갈팡질팡하는 미국의 군사·외교 및 이에 따른 중동의 혼란을 ‘덴덴코’(각자도생)라고 묘사했다. 미 존스홉킨스대 대학원의 할 브랜즈 교수는 ‘셀프헬프’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규정했다.

美 빈자리 메우는 中…사우디, 최악 대신 차악 선택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빼는 사이 중국은 사우디·파키스탄 안보그룹의 ‘그림자 맹주’로 자리매김하며 영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키스탄이 이번 이란전 휴전 중재에 나선 배경에도 ‘일대일로’로 묶인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중국으로서는 직접 나서지 않고도 파키스탄을 통해 중동 분쟁 조정자 위상을 확보한 셈이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 공격을 강하게 요청한 지도자로 알려졌다. 미국이 이란의 핵위협 제거도 대리세력 네트워크 파괴도 마무리짓지 못한 채 중동 지역에서 떠나는 것은 사우디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결국 사우디는 중국 영향권에 한쪽 발을 들이는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파키스탄 핵우산이라는 ‘차악’을 택했다. 차선책에라도 매달리는 각자도생의 단면인 셈이다.

브랜즈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미·중, 미·러 간) 신냉전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미국이 민주주의 진영 리더로 복귀해주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희망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이 국제질서를 수호하기는커녕 중국·러시아와 함께 기존 규칙 수정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닛케이는 “그 종착점은 힘과 거래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사회”라며 “그 속에서는 미국조차 포식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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