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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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화 데나리우스로 비춰보는 로마의 흥망성쇠
“포도밭 주인은 일꾼들에게 하루 품삯으로 1데나리온을 주기로 했습니다.”(마태복음 20장 2절)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데나리온은 로마에서 사용하던 은화 데나리우스를 의미한다. 예수가 활동하던 당시 예루살렘 지역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로마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라면 데나리우스를 사용했던 것이다. 기원전 211년 2차 포에니 전쟁 당시 주조를 시작한 데나리우스는 이후 500여년간 로마의 금융과 상업의 뿌리가 된다.
하지만 데나리우스의 위상은 폭군 네로의 등장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네로는 데나리우스 주조에 필요한 은 함량을 92%로 낮추고 남은 8%의 은은 자신이 착복했다. 이후 여러 대를 거치면서 데나리우스에 은 함량은 5%대까지 추락하고 30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화폐 개혁을 단행하며 화폐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임규태 박사는 데나리우스의 가치 추락과 로마 제국의 쇠락이 맞물리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나리우스의 가치가 폭락할 당시는 5현제 이후 군인들이 황제를 갈아치우며 혼란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임 박사는 “데나리우스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로마 제국의 안정성이 급격히 무너졌다”면서 “네로 시대 일어난 폭동 역시 데나리우스의 가치 하락이 원인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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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을 가진 자가 승자”…대항해 시대, 3국간 패권 전쟁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뒤 서유럽 해양 국가들이 앞다퉈 식민지 개척을 위해 바다로 나아가면서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다.
대항해 시대에 가장 적극적으로 식민지 개척에 나선 국가는 스페인이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를 비롯한 콘키스타도르는 신대륙에 황금의 나라(엘도라도)가 있다는 소문을 이용해 투자자들을 모아 신대륙 정복에 나섰다.
콘키스타도르는 아즈텍과 잉카 제국을 약탈하면서 막대한 양의 보물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던 만큼의 금은 확보하지 못했다. 그들은 금을 찾아 남미 내륙으로 진출하던 도중 현재 볼리비아 포토시에서 대량의 은맥을 발견한다. 포토시 은광의 개발은 대항해 시대의 향배를 완전히 뒤바꿔 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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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경쟁자였던 네덜란드는 스페인이 선점한 남미 대신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에도 막부와 독점 무역권을 따내고 일본 이와미 은광에서 생산하는 은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16~18세기에 일본은 전 세계 은의 3분의 1을 생산했고, 이와미 은광은 그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네덜란드는 이와미 은광에 힘입어 스페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해상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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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발주자 영국, 은을 위해 마약을 팔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에 밀리던 영국은 다량의 은을 확보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영국은 은이 풍부한 중국으로 눈을 돌린다.
중국에선 명나라가 세금 징수 수단으로 은을 사용하면서 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청나라에 들어서는 말발굽 모양의 마제은이 재물을 쌓는데 사용되면서 민간에서도 상당한 양의 은을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중국(당시 청나라)은 영국과의 무역이 탐탁지 않았다. 중국은 제후국이 진상을 하면 이에 답변하는 조공무역에 익숙해 근대적인 무역 개념이 약했던 데다 자국 내 물산이 풍부해 굳이 무역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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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를 지배했던 은은 근대로 접어들면서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금에 넘긴다. 현대에 이르러 은은 귀금속보다는 주요 산업 소재로 쓰이고 있다. 은은 전기전도율과 열전도율이 금속 중 가장 높다. 따라서 전기전도나 열전도가 중요한 고급 제품, 즉 태양광 패널이나 5G 관련 제품, 전기 배터리 등에 은이 널리 사용하고 있다. 현재 생산한 은의 60%를 산업용으로 소비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이 되자 은이 다시 금융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대두하고 있다. 하지만 임 박사는 은이 기축통화였던 과거의 위상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 박사는 “일반적으로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높아지지만 산업 소재는 다르다. 당장 은 값이 급격하게 오르면 첨단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은 가격 상승이 억눌릴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기원전 3000년 전 은과 금의 교환 비율은 2.5대 1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100대 1까지 내려갔다. 은의 산업용 수요가 확대되면서 은 가격이 지속적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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