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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곳에 뿌리를 내린 풍산 류씨는 고려 말 공조전서를 지낸 류종혜 선생이다.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일월산 지맥인 남산 부용대와 화산(271m) 사이를 휘감고 흐른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지만 마을사람들은 강물이 휘돌아간다고 해서 ‘물도리 마을’이라고 불렀다.
하회마을은 풍수적으로 산과 물이 서로 간섭하지 않아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땅으로 마을로 들어오는 산줄기의 흐름을 보면 백두대간의 태백산 옥돌봉에서 시작돼 문수산과 학가산, 검무산을 거쳐 마지막으로 솟아오른 것이 마을의 주산인 화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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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은 1999년 4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한 이후 국내외에 더욱 널리 알려졌다. 2010년 7월에는 유교적 양반문화와 주민들의 공동체놀이가 잘 보존되고 있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마을 북서쪽에는 서쪽 원지산과 북쪽 부용대 사이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류운룡 선생이 조성한 만송정 솔숲이 있다. 하회마을은 주변의 산과 강, 촌락이 한데 어울려 물 위에 피어난 연꽃과 같은 연화부수형을 이룬다. 연은 뿌리가 물속에 잠겨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꽃이 피면 향기가 좋고 씨앗도 많이 달린다. 연화부수형 마을에서는 훌륭한 인물이 태어난다고 한다. 하회마을을 빛낸 여러 인물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하겠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는 천연기념물 제473호로 지정된 만송정이 있다. 조선 선조 때 서애 류성룡의 친형인 겸암 류운룡이 1만그루의 소나무를 심고 정자를 세웠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으며 자연스레 생긴 모래 퇴적층에 들어선 숲에는 천태만상의 곡선미과 직선미를 그리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현재 이 숲에는 수령 90~150년, 높이 16~18m, 지름 30~70㎝ 정도의 소나무 100여그루가 있고 이후 1906년 다시 심은 수백그루의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보호면적은 47만 6430㎡로 국가유산청과 주민들이 함께 보호하고 가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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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암 류운룡 선생이 숲을 조성한 이유는 전통 풍수사상인 ‘비보풍수’(裨補風水)에 입각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비보’는 ‘부족한 것을 보완하다’는 의미이다.
기능에 따라 나뉘지만 만송정은 호안·보해·방풍림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 호안림은 강변이나 하천변에 나무를 심어 홍수를 막고 농경지와 마을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다. 보해림은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과 좋은 기운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한 마을숲이다. 또 수백년간 마을에 큰 홍수가 없었고, 겨울에는 찬 기운의 북서풍을 막아줘 방풍림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류한철 안동하회마을보존회 사무국장은 “일각에서는 ‘소나무 1만그루를 심어서 만송정’이라고 하지만 ‘소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며 “하회마을에는 125세대, 25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숲은 주민들과 하회마을 방문객들에게 산림휴양과 치유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마을 특성상 주민들이 전통과 질서를 계승하려는 생각이 강하다”며 “하회마을을 비롯해 매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열리는 하회선유줄불놀이까지 연간 100여만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전했다.
매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숲 일원에서는 하회선유줄불놀이가 열린다. 안동시가 주최하고 (사)안동하회마을보존회가 주관하는 하회선유줄불놀이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강 위에서 배를 띄우고 시를 읊던 ‘선유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공연으로 불빛이 줄을 타고 낙동강 위로 흘러가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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