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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앞서 정부부터 줄여라"...文 대통령, '실세 장관'들에 주문

최훈길 기자I 2017.08.06 19:09:45

김현철 靑 보좌관, 불필요한 예산 절감 주문
"부처 예산만 챙기면 재정 구조개혁 안 된다"
"재정개혁 칼자루, 김동연 부총리 쥐고 있어"
예산안 편성 앞두고 기재부·실세부처 '신경전'

[이데일리 김성곤·최훈길·박종오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에게 세금이나 돈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뼈를 깎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 공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의 불필요한 예산부터 절감하라는 지시다. 이달 중으로 마무리되는 내년도 본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부처별 ‘예산 부풀리기’가 근절될지 주목된다.

◇“부처만 챙기면 재정 구조개혁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 첫 날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지난 4일 이데일리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국민에게 증세를 요구하기 전에 새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재정 구조개혁”이라며 “‘우리가 먼저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대통령이 국가재정 전략회의를 이틀간 소집했다. (대통령의)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가 ‘부처만 챙기지 마라, 부처 예산만 챙기겠다고 자꾸자꾸 예산을 증액하다 보면 재정의 구조개혁이 안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보좌관은 문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불리는 핵심 참모다.

앞서 지난달 20~21일 문재인 정부의 첫 국가재정 전략회의가 문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렸다. 당·정·청 지도부는 조세·재정 정책을 비롯해 5년 간 나라살림을 꾸릴 방안을 논의했다. 고소득자·대기업에 대한 소득세·법인세 증세안이 이 회의를 통해 논의된 뒤 확정됐다. 이후 증세 논의가 주로 여론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김 보좌관은 부처들이 불필요한 예산을 절감하는 ‘세출 구조조정’도 당시 중요한 의제였다고 지적했다.

이는 공약을 이행하려면 세출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규모가 수십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이행하려면 임기 5년 간 공약재원 178조원이 필요하다. 국정기획위는 증세 등 세입 확충으로 82조6000억원을, 세출 절감으로 95조400억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세출 절감 내역 중 세출 구조조정 규모는 60조2000억원이다. 연간 12조400억원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셈이다.

단위=원.[출처=국정기획자문위원회]
김 보좌관은 “문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그날 다 모이게 해서 ‘지금은 우리가 이런 공약을 실현하고 이런 경제를 구현하려면 이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이 돈은 국민한테 손 벌리기 전에 이런 구조개혁을 통해서 먼저 우리가 (깎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며 “‘여기에 실세 장관도 관계 없이 동참하라. 여기에 칼자루, 핸들은 (김동연) 부총리가 쥐고 있다’는 것을 공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보좌관은 “(문 대통령이) ‘여러분들은 (한 부처의) 장관이 아니고 (나라를 책임지는) 국무위원의 입장에서 우리가 어떤 구조개혁을 해야 하는지 모두 공유하자’고 해서 각 장관을 다 임석시킨 것”이라며 “당 대표·정책위의장도 임석해 ‘전 정부와 그전 정부는 그냥 대충했지만 이번에는 대대적으로 (재정 구조개혁을) 하고 당도 이런 구조개혁에 동참하라, 공유합시다’라는 메시지를 이틀 간 집중적으로 얘기했다”고 전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시 회의에서 “몇천억원의 부처 예산이라고 하는 게 얼마나 참 중요한 돈인가. 이 돈은 헤프게 쓰면 안 되는 돈”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올해 예산안으로 400조5495억원, 지난달 추가경정예산안 11조333억원을 처리했다.

◇김동연 “국가 예산, 헤프게 쓰면 안 되는 돈”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관련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 참석했다. 김 부총리는 과로로 결막염에 걸리고 입술까지 터졌다. [사진=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이 같은 문 대통령의 지시가 얼마나 이행될 지는 이달 중으로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정부는 내달 2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올해는 문재인 정부 첫해에 예산을 늘리려는 실세 부처가 많아 예산을 깎으려는 기재부와 신경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기재부는 부처가 모든 재정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재량 지출(정부가 임의로 쓸 수 있는 사업 예산)을 10% 구조조정하도록 했다. 특히 연구개발(R&D), 사회간접자본(SOC), 문화 쪽 재량지출의 삭감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토부(김현미), 문화체육관광부(도종환), 해양수산부(김영춘), 행정자치부(김부겸), 고용노동부(김영주 후보자) 등 정치인 출신이 임명된 부처는 의욕적으로 예산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김동연 부총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각 부처 장관들이 새로 임명되고 의욕적 일하려는 생각이 강하다. 예산, 세출에 대한 요구가 많다”며 “세출 구조조정을 어떻게 잘할지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치인 출신 장관이 임명된 한 부처의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R&D, SOC 예산을 줄이고 일자리 창출 쪽으로 가려는 건 알지만, 우리 부처의 R&D 예산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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