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각]①금융산업 발전의 숨겨진 원동력 '금융위기'

김무연 기자I 2020.11.30 11:00:00

지상 강의 : ‘인더스토리Ⅱ’ 8강 금융위기
美 초대 재무장관 해밀턴, 금융업으로 국부 창출
유대자본, 미국 진출 막히자 투자은행으로 독점자본 지원
반독점법과 글래스-스티걸 법으로 국가의 금융 개입↑
클린턴 규제 완화로 닷컴 버블, 서브프라임 모기지 촉발

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인더스토리Ⅱ’에서 금융위기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 ‘인더스토리’(INDUSTORY
)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기자]임규태 박사는 ‘인더스토리’ 금융 편 마지막 주제로 ‘금융위기’를 선택했다. 하나의 산업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금융 산업의 발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박사의 금융위기 강연은 미국의 건국으로부터 시작했다. 1929년 대공황을 비롯해 2000년 닷컴 버블 붕괴와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굵직한 금융위기는 모두 미국에서 촉발됐다. 세계 금융의 중심인 미국 금융의 역사를 모르면 금융위기의 원인과 대응 방안을 논의할 수 없다는 말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면서 초대 재무장관을 역임한 알렉산더 해밀턴은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에 진 막대한 채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는 실물경제만으로는 채권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금융 산업을 육성해 국부를 키우려는 정책을 펼쳤다. 해밀턴은 미합중국 제1은행을 만들어 공용 화폐인 달러 발권을 중앙정부 통제하에 뒀고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 월 스트리트 부흥에 앞장섰다.

한편 해밀턴은 유럽 봉건 국가들을 사실상 막후에서 지배하는 ‘유대 자본’의 상륙을 철저히 틀어막았다. 유대 자본이 미국에서 고리대금업을 시작하면 미국 국민과 기업들이 유대 자본에 종속돼 신생 국가 미국의 안정적 성장에 방해가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대 자본이 ‘희망의 땅’ 미국으로의 진출을 포기할 리 없었다.

(사진 왼쪽부터) 리먼 브라더스를 창시한 리먼 형제, JP 모건을 세운 존 피어폰트 모건, 골드만 삭스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마커스 골드만.


◇ 美 독점 사업가를 키운 유대 자본

해밀턴의 정책으로 민간에 대출을 해주고 이자로 수익을 올리는 전통적인 상업은행을 세울 수 없게 된 유대 자본은 전략을 수정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본을 기업이나 사업에 직접 투자하고 이에 따른 배당과 주가 상승으로 이익을 취하는 새로운 금융업을 창조했다. 결국 오늘날 상업은행과 금융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IB)은 사실상 해밀턴의 유대 자본 억제 정책이 만든 나비효과인 셈이다.

투자은행의 탈을 쓴 유대 자본은 미국의 실물 경제가 급속히 팽창하는 시점에 맞춰 속속 미국 진출을 시도했다.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가 발생하고 금광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많은 자본이 필요해졌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1850년 리먼 브러더스가 월 스트리트에 설립됐다. 1861년 발발한 남북전쟁은 1865년까지 5년간 지속되며 상당한 전비를 소요했다. 이 혼란의 시기에 미국 땅에 발을 들인 것이 존 피어폰트 모건이 설립한 JP 모건이다. 1869년 미국 대륙의 동과 서가 철도로 이어지면서 철도 투자가 급증했는데, 이 철도 버블 시기에 탄생한 기업이 골드만 삭스다.
(사진 왼쪽부터) 석유왕 존 데이비드 록펠러,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철도왕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유대 자본을 바탕으로 세워진 투자은행들은 토종 독점 사업가를 키우는 방식으로 미국 경제를 잠식해 들어갔다. 석유왕 존 데이비드 록펠러, 철도왕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특정 산업 분야를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유대 자본의 묻지 마 투자 덕분이었다. 이들 독점 사업가들이 쌓은 막대한 부는 다시 투자은행으로 흘러들었고, 투자은행은 이를 재투자해 각 독점 사업가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 시기에 미국 산업은 급속히 발전했지만 주요 산업을 일부 기업이 독점하면서 각종 폐해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해밀턴이 막고자 했던 유대 자본의 영향력은 날로 커져갔다. 이에 미국 정부는 ‘반독점법’을 만들어 응수했다. 존 셔먼 상원의원이 발의해 1890년부터 시행한 반독점법인 ‘셔먼법’은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 모건이 보유한 철도지주회사 노던 시큐어리티스를 잇따라 해체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독점 자본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반독점법 시행 이후 미국은 5~6년 주기로 대규모 금융위기를 겪게 된다. 특히 1907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주요 기업들의 주가가 반 토막 나고 뱅크런까지 발생했다. 이때 모건이 사재를 털어 미국의 금융 시장을 안정화시켰고, 그 공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얻는다. 1907년 위기를 넘긴 미국은 JP 모건의 제안으로 금융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금융 개혁 위원회를 가동한다.

그 결과 1913년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System·현재의 Fed)이 탄생한다. 연준의 지분은 민간은행들이 나눠 소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임 박사는 “당시 발생한 연쇄적인 금융 공황이 단순히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 때문에 발생한 자연적 사건인지 의문”이라면서 “금융업자들은 대중의 편견과 공포를 활용하는데 매우 익숙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글래스·스티걸 법안을 만든 카터 글래스 상원의원(사진 왼쪽)과 헨리 스티걸 하원의원.
연준 설립 이듬해인 1914년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전쟁 특수를 누리게 된다. 당시 은행들은 고객의 예금이나 연금으로 과도한 투자를 해 주식시장에 막대한 버블이 생겼다. 결국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면서 증시 폭락과 함께 은행에 예금을 맡겼던 국민들마저 몰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1932년 대공황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대출을 해주고 이자 수익을 얻는 상업은행과 기업에 직접 투자를 하는 투자은행을 분리해야 한다는 ‘글래스·스티걸 법안’이 통과한다. 고객의 예금을 은행이 자의적으로 금융 시장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은 것이다.

◇ 족쇄 풀린 금융…‘닷컴 버블 붕괴’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번져

금융업계의 숙원이던 글래스·스티걸 법안을 무력화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빌 클린턴 대통령이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당선된 그는 1999년 ‘금융 서비스 현대화 법안’을 승인해 예금과 연금으로 금융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또한 금융 시장 부흥을 위해 파생상품에 관한 대부분의 규제를 풀었다.

금융 서비스 현대화 법안에 서명하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글래스·스티걸 법안이 무력화하자 대규모 자금이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IT 기업들에 몰리기 시작했다. 바로 ‘닷컴 버블’이다. 급등하던 주가는 2000년 중반부터 갑자기 폭락했고, 2001년에는 대부분의 기업이 도산하거나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유명세를 치른 기업이 바로 엔론이다. 텍사스의 에너지 기업으로 출발했지만 파생상품으로 급성장을 거듭하던 엔론은 IT 버블이 꺼지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 결국 엔론의 경영진은 대규모 분식회계를 저질렀고, 2001년 파산했다. 엔론의 회계 감사를 맡고 있던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도 엔론과 함께 공중 분해됐다.

임 박사는 엔론 사태의 원인은 회계부정이 아니라 지나치게 모험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엔론 사태는 주가와 연동한 혁신적인 사업 모델이 닷컴 버블과 함께 급성장하다가 갑자기 꺼진 것이 원인”이라면서 “엔론의 회계부정은 이때 발생한 막대한 손실을 감추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은 엔론의 회계부정에 쏠렸다. 미국은 2002년부터 상장기업의 회계 감독을 엄격하게 하는 사베인즈·옥슬리 법을 시행한다. 이 법안의 깐깐한 기준 때문에 투자를 할 만한 상장 기업 수가 급감했을 뿐 아니라 신규 기업공개(IPO)도 극히 어려워졌다. 결국 클린턴의 규제 완화와 아프간 전쟁으로 시중에 풀린 대량의 유동성 자금은 결국 부동산 파생상품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 투자은행들은 집을 산 사람들의 대출금을 묶은 파생상품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만들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호황이던 시기에 CDO 수요는 점점 커졌지만 집을 사는 사람은 한정돼 있었다. 이에 은행들은 집을 살 수 없는 낮은 신용등급(서브프라임 등급)의 사람들에게까지 대출을 해주며 CDO를 발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다.

실물 경기에 비해 금융이 지나치게 과열됐다는 외부의 압박에 굴복한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2004년부터 기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수익률이 감소하게 된 CDO의 몰락이 바로 이어졌다. 금리가 높아지자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은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했다. 위기를 느낀 은행들은 수금에 나섰고 우량한 신용등급을 가진 사람들조차 빚 독촉에 시달리다 집을 내놓으면서 경제는 한순간에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결국 2008년 9월 월 스트리트 중흥을 이끌었던 대형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2009년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약 7000억 달러(774조원) 규모의 구제 금융 집행을 결정했다. 문제는 해당 자금이 CDO를 만든 투자은행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갔단 점이다. 투자은행들은 CDO를 만들면서 투자손실금에 대한 보험(CDS)도 함께 들어놨기 때문이다.

그해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긴급 구제 금융에 나섰지만 상당수는 AIG 등 대형 보험사에 투입됐고, 그 돈은 다시 투자은행이 들고 있던 CDS 보험금으로 지급됐다. 2008년 금융위기의 주역들인 월 스트리트 고위 임원들은 그 성과로 막대한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다.

◇‘위대한 생각’은…

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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