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0시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 정문. 연필과 색연필을 쥔 타투이스트(문신사) 수십여명이 이젤에 놓인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흰 도화지는 인물 초상화를 비롯해 꽃과 풀 등 식물, 오리와 강아지 등 동물 그림으로 금세 채워졌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타투유니온은 이날 타투(문신) 시술은 의료행위가 아닌 예술행위라며 타투 합법화를 촉구하기 위해 ‘타투이스트가 그림을 그려 드립니다’ 퍼포먼스 행사를 열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타투 합법화가 공약으로 등장하고,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타투 법제화를 검토한 후에도 타투이스트가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는 일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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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근 1년간 타투유니온 조합원 650명 중 1.5%에 해당하는 10명의 타투이스트가 ‘범법자’로 몰려 징역형 등 형사처벌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도 모 연예인에게 타투 시술을 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고 오는 25일 항소심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미술가들이 타투를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야 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며 “한국 타투이스트가 타투 작업을 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도 놀라운데 감옥에 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해외 타투이스트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타투 불법국가다. 대법원은 1992년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 판례는 지금까지 유지돼 타투이스트는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타투유니온에 따르면 최근 타투가 불법이라는 점을 악용해 처음부터 돈을 갈취하려는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김 지회장은 “타투 작업을 받고 타투이스트에게 돈을 갈취하고 협박하는 경우가 하루에도 몇 건씩 터지고 있다”며 “한 지역에서는 지난 13일 15만원 상당의 타투를 받고 돌아간 손님이 타투와 관계없는 진단서를 보내 800만원을 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한 사례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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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자회견에는 타투유니온지회 소속 조합원 허모씨가 남편과 어머니와 함께 참석해 타투 합법화를 호소했다. 그는 캐나다인 남편과 이민을 준비하던 중 타투 작업 후 변심한 손님의 해코지로 보건범죄단속법(부정의료업자)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 비자발급 절차는 중단됐고, 이민 계획마저 틀어졌다고 주장했다. 법리오해를 이유로 항소한 허씨는 “하루빨리 법이 개정돼서 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법상 타투 시술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의료법(제27조)과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는 보건범죄단속법(제5조)에 근거해 처벌받을 수 있다. 의료법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영리 목적’으로 판단되면 보건범죄단속법 위반 혐의로 기소가 이뤄진다. 어떤 수사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법 적용이 달라져 처벌 수위가 벌금형에서 징역형으로 ‘복불복’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이날 허씨의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2부(재판장 진상범)는 허씨의 다음 공판기일을 5개월 뒤로 잡았다. 허씨 측 변호인 측에서 인수위에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행위를 합법화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현재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문신사 법안’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낸 ‘타투업법안’ 등 6개 법안이 발의되는 등 입법화 움직임이 있다고 관련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하면서다. 허씨 측 변호인은 재판 후 기자들과 만나 “재판부에서 변론기일을 이렇게 길게 잡은 것은 다른 재판과 비교해서 이례적”이라며 “각 법원에서 비슷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고, 헌법재판소의 위헌청구나 입법논의 등을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31일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문신 시술을 할 경우 처벌하는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의료법 27조 1항과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5조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고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등 내용의 헌법 소원을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기각했다. 다만 타투를 둘러싼 기류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7년 헌재 재판관 전원(9명)은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이 ‘합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2014년과 2016년에는 ‘위헌’ 판단을 내린 재판관이 2명 나왔고, 지난 3월에는 4명으로 늘었다.
김 지회장은 사법부의 결자해지를 요구했다. 그는 “입법부에 책임을 미룬 헌법재판소의 비겁한 판결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실제 재판을 진행하는 법원에서는 더 많은 경청이 있는 만큼 큰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타투유니온지회는 6.1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 타투 법제화에 대한 견해를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타투 합법화를 위해 국회, 수도권 소재의 법원 앞에서 1인 시위와 기자회견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