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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각]①이동 혁명 촉발한 인류 최대 발명품 '바퀴'

김무연 기자I 2020.12.21 11:00:00

지상 강의 : ‘인더스토리Ⅲ’ 1강 바퀴(輪)
바퀴, 동력 전달과 이동 수단으로 활용
바큇살→고무타이어→공기 튜브 타이어로 개량
증기기관차 보다 50여년 먼저 등장한 증기자동차
19세기 후반 전기차와 내연기관 등장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 ‘인더스토리’(INDUSTORY
)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

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인더스토리Ⅲ’ 1강 ‘바퀴(輪)’ 편을 강의하고 있다. ‘인더스토리’는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코너로 시즌3에서는 교통·물류산업을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사진=김태형 기자)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기자] 임규태 박사는 ‘위대한 생각: 인더스토리Ⅲ’의 테마인 ‘교통·물류’ 첫 번째 강연으로 ‘바퀴’를 선정했다. 임 박사는 “바퀴는 회전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변환시킨다”며 “바퀴는 동력기관 뿐 아니라 이동수단으로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지상에서 운영되는 이동 수단 대부분은 바퀴를 이용해 움직인다. 엔진으로 기계를 돌리기 위해서는 바퀴가 동력 전달 축으로 작용한다. 사실상 현대 문명은 바퀴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셈이다.

수메르인들이 탔던 전차. 당시 스메르인들은 나무판을 여러 개 이어 붙여 만든 바퀴를 이용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 석재를 운반하기 위해 썰매 또는 여러 개의 통나무를 깔아 굴리는 방식을 이용했다. 바퀴를 발명한 것은 기원전(BC) 3500년께 수메르 문명으로 추정된다. 수메르인들은 통나무를 얇게 자른 후 축을 연결하는 마차를 발명했다. 이후 수메르인들은 판자 3개를 엮은 바퀴를 고안해 내구성과 더불어 생산성을 높였다.

BC 1600년 탄생한 히타이트 제국은 다시 한 번 바퀴 혁명을 일으켰다. 바큇살을 발명한 것이다. 히타이트인들은 원형 나무판 가운데를 파내고 바큇살을 덧대는 방식으로 바퀴의 내구성과 승차감을 높였다. BC 1300년 무렵 히타이트 제국과 이집트 간에 벌어진 ‘카데시 전투’에서는 양측에서 도합 마차 5000~6000대가 동원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비슷한 시기 중국 상나라의 수도 은허 부근에서도 바큇살 달린 마차 유물이 발견됐다. 현재까지 발견된 기록으로만 추정해도 바큇살 달린 바퀴와 이를 이용한 마차는 5500년 동안 인류의 탈 것을 지배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자전거를 처음 개발한 바론 칼 폰 드라이스.


◇ 나무 바퀴에서 고무 타이어까지

19세기 초반 수천 년 동안 정체해온 바퀴는 다시 한 번 혁신의 계기를 맞게 된다. 1818년 독일의 바론 칼 폰 드라이스가 자전거를 발명한 것이다. 그가 처음 만든 자전거는 방향 전환을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직접 발로 땅을 차서 바퀴를 움직이는 구조였다. 이후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현재의 자전거로 빠르게 개량되었지만 당시 사람들의 불만은 컸다. 자전거는 사람이 탑승자이자 동력원이기 때문에 바퀴의 내구성과 승차감이 마차보다 중요했다. 발명가들이 바퀴의 혁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다.

1846년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톰슨은 동남아시아에서 대량 수입하기 시작한 ‘고무’라는 신물질에 주목한다. 그는 바퀴에 고무를 덧대면 마찰력에 의한 추진력을 높이고 승차감도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고무타이어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바퀴에 고무만 덧 댄 타이어는 여전히 딱딱했고 도로에서 장애물에 걸렸을 때 충격을 흡수하기 어려웠다.

존 보이드 던롭.
1888년 존 보이드 던롭은 어린 아들이 딱딱한 바퀴의 자전거를 타다가 튕겨져 나가며 부상을 입자 푹신한 바퀴를 떠올리게 된다. 그가 생각해낸 건 타이어 안쪽에 공기 튜브를 넣는 방식이었다.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공기 튜브 타이어가 발명된 배경이다. 그는 이 아이디어로 1889년 타이어 회사 ‘던롭’을 창업했다.

자전거에만 사용하던 공기 튜브 타이어는 1895년 프랑스 ‘파리-보르도 랠리’에서 처음 자동차에 적용된다. 이 대회에 참가한 푸조 ‘르클레어’는 세계 최초로 공기 튜브 타이어를 장착한 자동차로 기록된다. 푸조가 장착한 타이어는 프랑스 미쉐린 형제가 제작했다. 바로 오늘날 세계 3대 타이어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미쉐린’의 창업주다.

니콜라스 퀴뇨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증기자동차.


◇ 탈것의 진화… 증기기관과 내연기관


1705년 토머스 뉴커먼이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산업혁명이 시작된다. 증기기관이 만들어낸 동력은 다양한 기계를 돌리는데 쓰였다. 일부 발명가들은 이동수단으로 활용하는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1769년 프랑스 공병 장교 니콜라스 퀴뇨는 대포를 끌기 위해 세계 최초로 증기자동차를 만들어냈다. 증기기관을 활용한 대표적 운송수단으로 알려진 조지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보다 무려 56년이나 앞서 발명된 것이다.

1801년 영국의 발명가 리처드 트레비식이 상용 증기자동차를 개발하면서 영국에서 증기자동차 시대가 열렸다. 트레비식 증기자동차를 이용해 택시, 버스 등 다양한 교통 산업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기술 발전을 거듭한 증기자동차는 시속 30㎞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에티엔 르누아르가 고안한 최초의 내연기관.
한편 유럽 대륙에서는 증기가 아닌 ‘폭발력’을 이용해 엔진을 구동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폭발력을 동력으로 이용하는 아이디어는 1678년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호위겐스가 처음 개념을 제시했다. 그가 고안한 ‘화약 엔진’은 실린더 하부에 화약을 넣고 폭발시켜 실린더를 위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검증했다. 결국 오늘날 자동차 엔진으로 널리 사용되는 내연기관은 모두 호위겐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이다.

1860년 프랑스 기술자 에티엔 르누아르는 폭발력을 이용해 회전운동을 하는 최초의 내연기관을 고안해냈다. 르누아르 엔진에 영감을 얻은 독일의 니콜라스 오토는 산업용 내연기관을 만들고자 유능한 기술자였던 고틀리프 다임러와 빌헬름 마이바흐를 영입했다. 두 엔지니어의 합류로 오토 사이클이라는 내연기관이 완성됐다. 하지만 오토는 대규모 산업용 내연기관에 관심이 있었고 다임러와 마이바흐가 제시한 소형 경량 내연기관 아이디어를 묵살했다. 결국 두 사람은 오토 회사를 떠나 탈 것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 경량 내연기관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고틀리프 다임러(사진 왼쪽)과 빌헬름 바이바흐.


◇ 대중 앞에 등장한 내연기관 자동차

특허소송을 통해 오토의 내연기관 특허를 무력화 시키는데 성공한 다임러는 1885년 마이바흐와 함께 내연기관을 자전거에 장착한 ‘라이트 바겐’을 선보인다. 라이트 바겐은 내연기관을 사용한 최초의 오토바이로 기록된다. 두 사람은 다시 1886년 내연기관을 마차에 장착한 내연기관 사륜 자동차 ‘다임러 모터마차’를 발표한다. 다만 ‘다임러 모터마차’가 첫 내연기관 자동차는 아니었다.

1885년 다임러의 공장과 불과 100km 떨어진 맨하임에서 칼 벤츠가 액체 연료를 사용한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 ‘모터바겐’을 완성했다. 카를의 아내인 베르타 벤츠는 두 아들과 함께 개량 모델 ‘모터바겐3’을 몰고 104㎞ 떨어진 친정을 왕복 운전했다. 이 여행은 자동차를 이용한 최초의 장거리 운전으로 기록된다. 유능한 공학자였던 베르타 벤츠는 내리막길에서 속도 조절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브레이크 라이닝’ 아이디어를 개발했다.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다임러의 내연기관이 소개됐다. 다임러의 내연기관에 적극 관심을 보인 여성이 있었다. 루이스 사라쟁이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다임러의 내연기관을 이용한 자동차 사업을 제안했고 사별한 그녀의 남편과 친분이 있던 다임러는 이를 흔쾌히 수락한다. 이후 사라쟁은 기술자 르네 파나르, 에밀 르바소를 영입해 1889년 ‘파나르-르바소’라는 자동차 회사를 세운다.

파나르-르바소 자동차.
파나르-르바소는 1895년 열린 ‘파리-보르도 랠리’에 참가한다. 이 대회에서 파나르-르바소는 다른 증기자동차, 전기자동차를 따돌리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파나르-르바소의 자동차는 4단 기어가 탑재됐고 차 전면에 엔진을 뒀지만 후륜구동을 하는 프론트 엔진(Front engine - Rear wheel drive·FR)을 도입했다. 오늘날 고성능 스포츠카들은 대부분 파나르-르바소의 자동차와 같은 구성을 갖기 때문에 대다수 공학자들은 파나르-르바소를 현대 자동차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20세기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주요 운송수단의 지위는 마차가 누리고 있었고, 자동차 시장의 주류 또한 증기자동차였다. 파나르-르바소가 자동차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내연기관 자동차는 여전히 부호들의 값비싼 취미용품 정도로 여겨졌다. 1900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내연기관 자동차가 기존의 운송·이동수단을 송두리째 대체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위대한 생각’은…

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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