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 지난 15일 밤 시작된 쿠데타가 그렇다. 터키 남서부 휴양지 마르마리스에서 휴가 중이었던 그는 쿠데타 초반 사망과 망명설까지 돌 정도로 수세에 몰렸다. 쿠데타 세력은 주요 언론사와 공항, 도로를 장악하며 쿠데타가 성공했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르도안이 이스탄불로 돌아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는 “죽을 각오로 돌아왔다”면서 쿠데타 세력에 맞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가 영상통화를 통해 쿠데타를 막아달라고 호소하자 대통령 지지자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이들이 쿠데타 세력을 맨몸으로 막아서면서 쿠데타 세력은 급격히 꺾이기 시작했고 결국 6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사실 이스탄불 빈민가 출신으로 아무런 배경도 없던 그가 터키 최고권력자로 오른 뒤 14년간 정권을 유지하는 과정은 늘 위기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여러 차례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왔다. 지난 2014년 선거가 대표적이다. 그의 아들이 거액의 비자금을 은폐하고 뇌물수수를 논의하는 전화통화 내용이 폭로되면서 인생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의혹이 불거지자 에르도안은 음모론을 펼치며 상황을 돌파했다. 그는 “(정적인) 페툴라 귤렌과 사법부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에르도안의 지지층은 오히려 결집했고, 그해 치러진 대선에서 에르도안은 집권에 성공했다.
안팎의 견제에 시달리던 에르도안에게 이번 쿠데타는 묘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서방으로부터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권력이란 점을 인정받았다. 겉으로는 ‘술탄의 재림’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게 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술탄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의 황제로 이슬람 종교지도자를 겸한 절대 군주다.
내부적으로는 세속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눈엣가시’ 군부를 길들이면서 동시에 귤렌 추종자들을 쓸어낼 기회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3000명에 가까운 쿠데타 세력을 체포하면서 피의 숙청을 예고했다. 에르도안은 앞서 두 차례나 쿠데타 음모를 적발했다며 반대파들을 몰아내는 기회로 활용했다.
터키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 에르도안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철권통치를 한층 강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진압 과정에서 시민의 지지를 확인한 그가 쿠데타와 같은 급변사태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숙원’인 대통령제 개헌을 가속할 공산도 커졌다. 모든 것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다 보니 이번 쿠데타가 자작극이나 기획 쿠데타가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올 정도다.
반면 군부를 포함해 반(反) 에르도안 세력의 입지는 당분간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된 귤렌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그는 ‘히즈메트’(봉사)라는 이슬람 사회운동을 이끈 이슬람학자이자 종교지도자로 자발적 망명 형태로 미국에 머물고 있다. 귤렌과 에르도안 대통령은 한때 세속주의 군부의 정치적 세력에 맞선 정치적 동지였다. 두 사람은 2002년 현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 이 집권한 이후 함께 터키의 민주화를 위한 개혁을 추진했고, 2005년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것이었을까. 집권 이후 독자적 정치 기반을 닦은 에르도안은 점차 이슬람주의를 강화하자 둘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하다 결국 2013년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부패 수사를 계기로 완전히 결별한다. 에드로안의 압박이 지속하면서 터키 각계에서 귤렌의 추종세력은 대부분 권력을 잃었다는 평가다. 일부만이 군부와 사법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귤렌은 쿠데타의 배후라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면서 “민주주의는 군사행동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