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화강암에 한 폭의 회화를 그렸다고 할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한 문양을 자랑하는 국보 제101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일본에 강탈당하고 한국전쟁 중 폭격에 부서져 ‘비운의 승탑’이라고도 불렸던 탑은 올해 초 5년간의 보존처리를 끝내고 고향 원주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하지만 지난달 돌연 귀향이 3년간 미뤄지게 됐다. 법천사 터에 홀로 남겨졌던 지광국사탑비에 대한 보수결정은 물론, 탑을 본래 위치로 옮길지 박물관으로 옮길지에 대해서도 각계의 입장이 나뉘면서다.
이상훈 원주시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21일 이데일리와 통화에서 “현재 지광국사탑비 비신에 금이 가 있고 일부 전문가들은 탑비가 기울어 있다고도 진단하는 등 언제 붕괴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지광국사탑과 탑비가 있던 법천사지터 지반도 두 유물의 무게를 버틸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아 문화재청과 의논해 탑비 보수 이후에 지광국사탑도 함께 이전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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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국사탑비도 복원 시급…이전 위치 두고도 의견 나뉘어
지광국사탑비는 고려시대였던 1070년(문종 24년) 지광국사탑 옆에 세워진 탑비로 지광국사(984~1067)의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에 구름과 어우러진 용이 정교하고 화려하게 새겨진 비문이 특징으로 지광국사탑과 함께 국보로 지정돼 있다. 탑비는 지광국사탑이 일제 때 강제 반출되면서 홀로 자리를 지켜왔다.
탑비를 보존처리하는 데는 행정 절차까지 고려했을 때 최소 3년 정도 걸릴 예정이다. 이 학예연구사는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해체 작업을 해야 하는데, 탑비가 일반적인 화강암보다 약한 금석각으로 제작돼 해체시 무너질 우려가 있다”며 “해체 설계 작업만 1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탑비는 올해 해체 설계 후 내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해체 작업을 시작해 2023년까지 보존처리를 완료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광국사탑을 원래 탑이 있었던 법천사지터에 둘지, 법천사지유적 전시관으로 이전할지를 두고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원형보존을 위해 원위치에 되돌려야 하지만, 지광국사탑이 심각하게 훼손된 만큼 야외에 있을 경우 몇년 이내에 또 다시 손상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광국사탑 보존처리를 맡았던 장성윤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지광국사탑은 문양이 많고 화려한 게 특징인데 이미 많은 부분이 폭격 등을 맞으면서 마모·손상됐다”며 “게다가 두차례 보수를 받으면서 탑이 많이 약해져 있기도 해 최대한 비바람 등을 피해야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장 연구관은 박물관에서 보존을 하거나 원래 위치에 두더라도 최소한 보호각 등을 통해 훼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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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시민들 원위치 복귀 원하지만…선뜻 결정 어려워
원주 시민들은 100년간이나 떠돌던 탑의 역사적 의미나 상징성을 고려해 탑을 본 위치로 되돌려놔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환수추진위 측은 “법천사지 주변 시민들은 워낙 오랫동안 탑이 떠나 있었기도 하고, 역사적 의미를 감안해서도 당연히 본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훼손을 우려해 “최소 1~2년이라도 원위치에 두고 그 후에 다시 이전을 고려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지광국사탑의 이전과 관련해 쉽지 않은 결정이라며 선뜻 답을 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도진영 경주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문화재가 원위치로 돌아가는 게 맞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훼손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그는 “보존과학적 입장에서 보면 중환자 수준이었던 지광국사탑이 잠깐이라도 외부에 있는 것은 굉장히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암석이 풍화될 때도 일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1~2년 정도만 밖에다 두고 또 다시 이전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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