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각]①'불의 혁명', 인류 문명의 탄생과 발전을 이끌다

김무연 기자I 2020.07.13 10:41:30

지상 강의 : ‘인더스토리’ 8강 불(火)
불로 음식 가열, 식량혁명으로 인류 문명 탄생
에디슨의 전구로 생겨난 ‘제 2의 불’ 전기
맨해튼 프로젝트, ‘제 3의 불’ 원자력의 탄생 이끌어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 ‘인더스토리’(INDUSTORY
)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

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인더스토리’ 불(火)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기자]불은 물질이 산소와 화합해 연소하는 현상이다. 불은 연소 과정에서 빛과 함께 ‘열’이라는 또 다른 선물을 인류에게 선사했다. 선조들은 불이 제공하는 열로 추위를 견디고 다른 동물들로부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문명을 탄생시킨 결정적 계기는 ‘음식을 익혀먹었다’는 사실이다. 불로 음식을 익혀 먹으면 기생충, 세균에 의한 질병을 방지할 수 있고 소화가 잘돼 에너지 효율이 높아진다.

임규태 박사는 “불로 짐승의 습격을 막는다거나 추위를 피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익힌 음식은 소화가 잘되기 때문에 육식과 채식이 모두 가능해져 식량의 스펙트럼이 넓어졌을 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이 높기 때문에 생존에 필요한 식량의 절대량 자체가 줄어든다. 불의 사용에 의한 식량 문제 해결은 인구 수 증가로 이어졌고, 인류 문명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임 박사는 “불은 인류에게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엄청난 잉여 시간을 선물했다”며 “인류는 그 잉여 시간을 활용해 문명의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증기기관을 발명한 토머스 뉴커먼(사진 왼쪽)과 증기기관을 개선한 제임스 와트.


◇ 열에서 동력으로, 동력에서 전기로…불이 가져온 현대 문명

중세까지 불이 제공하는 열 자체를 활용하던 인류는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열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 1705년 영국의 토머스 뉴커먼은 물을 끓여 발생하는 증기의 압력으로 피스톤을 움직이는 장치를 발명한다. 이것이 ‘증기기관’의 탄생이다. 하지만 뉴커먼의 증기기관은 증기를 내뿜고 나면 실린더가 식어 열효율이 낮았다.

제임스 와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스톤과 물을 끓여 수증기를 모으는 부분을 분리하는 방법을 개발한다. 한쪽에서는 계속 물을 끓여 수증기를 모으고 실린더는 지속적으로 피스톤 운동을 반복하도록 해 증기기관의 효율성이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이제 인류는 불로 물을 끓이는 것만으로 수백 명분의 노동력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뉴커먼이 발명하고 와트가 개량한 증기기관은 석탄을 캐고 기차를 움직이며 방직기계를 돌리는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적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산업혁명은 불의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치환하는 동력 혁명이었던 것이다.

세계 최초의 화력 발전소가 설치된 독일의 린더호프 궁전.
인류는 증기기관 발명 이후 다시 한 번 불의 혁명을 맞는다. 1866년 독일의 에른스트 베르너 폰 지멘스는 자석의 양극 사이에 코일을 넣고 빠르게 회전시켜 전기를 만드는 교류 발전기를 선보였다. 불이 제공하는 열을 운동 에너지로 바꾼 인류는 운동 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1878년 독일의 요한 지그문트 슈케르트는 린더호프 궁전에 전구를 밝히는 프로젝트에 지멘스의 교류 발전기를 사용했다. 그는 물을 데워 증기를 만든 뒤 증기기관을 교류 발전기에 연결해 코일을 회전시켜 전기를 발생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기는 린더호프 궁전 곳곳에 설치한 전구를 동작시켰다. 슈케르트의 이 장치가 역사상 최초의 화력발전소로 기록된다.

이즈음 미국에서는 손쉽게 동력을 얻을 수 있는 수력 발전이 대세였다. 하지만 뉴욕 등 대도시에서 마천루가 올라가면서 전구를 밝히려는 전력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결국 수력 발전만으로는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화력 발전이 전기 생산의 주력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 과정에서 화력 발전의 연료로 사용되는 석유도 주요 에너지원으로 떠오른다.

히틀러의 핵개발 소식을 알린 에드워드 텔러(사진 왼쪽부터), 레오 실라르드, 유진 위그너.
◇ 제3의 불 ‘원자력’…인류의 희망에서 공포로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취임한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히틀러는 게르만 우월주의를 외치며 유대인을 탄압한다. 결국 독일에서 활동하던 유대인 학자들은 나치의 억압을 피해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그 가운데 헝가리 출신의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와 유진 위그너도 포함됐다.

1934년 미국으로 건너간 두 물리학자는 동향 출신의 레오 실라르드를 만나 히틀러가 핵무기를 개발 중이라는 정보를 알려준다. 실라르드는 미국 정부에 이 사실을 알리려 했지만 망명 과학자 신분의 한계에 부딪혔다. 실라르드는 미국에 자리 잡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아인슈타인은 실라르드가 작성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보내는 편지에 서명해준다. 편지를 받아 본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문가들에게 핵개발의 가능성을 검토할 것을 지시한다.

일본 히로시마(사진 왼쪽)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폭발하는 모습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루스벨트는 즉각 핵무기 개발을 지시하고, 1941년 맨해튼 계획이 공식 출범한다. 프로젝트의 중추에 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이 미국 전역에 분산된 연구소에서 핵폭탄 개발을 진행한다. 결국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 발의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마무리됐다.

미국의 라이벌로 부상하려고 꿈틀거리던 소련은 1949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핵실험에 성공한다. 핵무기라는 유례없는 위력의 살상 방법의 등장으로 냉전은 고착화하고 각국 정부는 전쟁 발발시 세계가 공멸한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혔다. 1953년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핵’이란 연설을 통해 핵의 평화로운 사용 방법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가 시작됐고 이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설립된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1954년 소련은 오브닌스크에 세계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립한다.

화력 발전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전기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주요 수단으로 자리매김 했지만 석탄, 석유 등 주요 자원의 고갈 우려가 커지면서 열 에너지를 얻는 새로운 방식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원자력은 인류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다.

세계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소련의 오브닌스크 핵발전소.


◇ 체르노빌부터 후쿠시마까지…원자력, 과연 안전한가

원자력 발전소는 적은 양의 우라늄으로 대량의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화력발전소보다 효율이 월등히 앞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오브닌스크 핵발전소를 시작으로 세계에서 원자력발전소가 경쟁적으로 세워지게 된 이유다.

문제는 안전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해리스버그 스리마일 섬 원자력발전소에서 노심이 녹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스템 결함과 관리자의 실수가 겹쳐 노심의 냉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원자로가 붕괴되는 사태는 모면했고 인명피해도 미약했지만 미국 내에서 원자력에 대한 반감이 거세지는 계기가 됐다.

1986년 소련 우크라이나 키예프 주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체르노빌 발전소 부소장 아나톨리 댜틀로프가 원자로 가동이 중단될 경우 관성만으로 터빈이 얼마나 돌아갈지 실험하는 과정에서 오동작이 일어난 것이다. 원자로는 순식간에 폭발했다. 초기 대응 오판, 기술 부족 등으로 체르노빌의 붕괴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소련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지역을 콘크리트로 막아버린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또한 핵연료가 용융해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것도 막아야 했다. 아직도 명확히 밝혀진 바 없지만 원자로 가동률을 낮추기 위해 전력 공급을 줄이자 냉각 장치가 오작동하면서 원자로가 폭발했다는 가설이 대두한다.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세 곳. 왼쪽부터 미국 스리마일 발전소, 소련 체르노빌 발전소, 일본 후쿠시마 발전소.
현재 세계적으로 전력 수요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부터 원자력 발전에 의한 전력 생산량은 늘지 않고 있다. 핵발전소를 기획하고 만드는데 10년 정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적으로 1990년대부터 핵발전소 건립이 사실상 중단되다시피 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임 박사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도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면서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대중의 우려가 커졌고, 이것이 전기를 필요로 하는 유관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이 가운데 중국만이 지속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늘리고 있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위대한 생각’은…

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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