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사이 남양유업과 아워홈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국내 주요 식품기업 대표 두 명이 불명예 퇴진한 까닭으로는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기업 경영과 소비 트렌드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세 가지 의제 중 ‘환경’에만 힘을 쏟는 안일함이 화를 불렀단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대중에게 노출이 잦은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기업이 많은 식품업계 특성상 총수일가와 관련된 부정적 이슈가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산업군보다 지배구조에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조언했다.
|
◇ 견제 없는 이사회·오너 위주 경영, 경영권 교체로 이어져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아워홈은 지난 4일 이사회를 열고 구본성 아워홈 부회장을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했다. 새 대표이사에는 구지은 전 캘리스코 대표가 올랐다. 구 부회장은 지난 3일 보복운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마자 하루 만에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구 부회장의 해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은 보복운전에 따른 실형 선고이지만, 업계에서는 근본적인 문제로 범 LG가의 장자승계 원칙의 부작용을 꼽고 있다. 구 신임대표는 2004년 아워홈에 입사해 일해왔지만, 2016년 갑작스럽게 부사장 직위에서 해임됐고 그 자리를 구 부회장이 꿰찼다.
실적을 내고 있는 막내딸 대신 기업을 운영해본 적 없는 장자를 대표로 선임한 것은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고 오너가의 입맛에 따라 좌우돼왔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로 회자했다. 특히 능력을 검증받은 구 대표 대신 남성이란 이유로 구 부회장을 대표에 앉힌 것은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현재 기업 환경과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아워홈 사태는 ESG 경영 관점에서 사회적 문제(S)와 지배구조 문제(G) 양측에 모두 해당하는 사안”이라며 “ESG 경영이 강화되고 있는 현 추세에 비춰보면 범 LG가의 장자승계 원칙은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남양유업 또한 ‘불가리스’ 사태로 이광범 대표가 사임하고 오너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특히 홍원식 남양유업 전 회장은 자신을 비롯한 오너가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전량을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며 남양유업과 결별했다.
남양유업은 2013년엔 대리점 밀어내기로 갑질 논란에 휘말렸고 지난해에는 경쟁사 비방 댓글을 단 사실이 포착돼 비판받았다. 반복되는 실책에는 경직된 지배구조가 한 몫 했다는 평가다. 지난 1분기 기준 남양유업의 이사 6명 가운데 3명은 대주주 홍 회장과 그 일가였고 1명은 홍 회장의 복심이라 불린 이 전 대표였다. 사실상 홍 회장의 뜻대로 이사회가 운영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 새로운 수장들, 이사회 혁신 및 투명 경영 강화할 듯
남양유업은 그동안 ESG 경영을 강화한다고 밝혀왔다.
다만 ESG 가운데 주로 E(환경) 분야에만 집중해온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남양유업은 지난 3월 ‘ESG 추진위원회’를 출범했지만 빨대 제거 등 환경 보호 활동과 취약 계층 지원 등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하는 데 그쳤다. 아워홈도 전국에 생분해성 비닐 봉투를 도입하는 등 친환경 기조를 따라가고 있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양사의 새로운 경영자들은 지배구조 개선을 선결 과제로 삼을 것으로 전망된다. 남양유업을 인수한 한앤컴퍼니는 ‘집행임원제도’를 남양유업에도 적용해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효율화를 꾀할 예정이다. 집행임원제도는 의사결정과 감독기능을 하는 이사회와 별도로 전문적인 업무를 하는 집행임원을 독립적으로 구성하는 제도다.
구 대표를 새로운 수장으로 맞이한 아워홈은 지배구조 개선의 일환으로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아워홈이 가족기업으로서 폐쇄적인 경영을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만큼 기업 주요 사항을 공시하고 개인 주주들의 감시를 받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삼양식품의 앞선 사례를 참고해 볼만하다고 조언한다.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과 김정수 총괄사장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월 유죄를 선고받으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삼양식품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이사회 산하에 ESG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지배구조 개선에 전사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김 총괄사장도 경영일선에 복귀했지만, 대표이사 대신 ESG위원장을 역임 중이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은 “기업 입장에서는 총수 일가의 심기를 건드려야 하는 지배구조 개선보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자가 적은 환경 문제에 집중하며 ESG 경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라면서 “지배구조 개선이 없다면 기업의 경영활동은 결국 총수 일가에 이득이 되는 쪽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중에게 익숙한 식품업체의 경우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발생하는 오너리스크나 집안싸움이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줘 실적 악화까지 불러올 수 있다”라면서 “B2C 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지배구조 개선에 역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