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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거에 대한 불신이 공공 공간의 점거와 봉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특히 그 장소가 올림픽공원이라면 문제는 더 무겁다. 올림픽공원은 단순한 행사장이나 개표소가 아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공간이자, 시민의 여가와 체육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공의 장이다. 동시에 수많은 종목 단체와 체육 관련 기관이 일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한국 스포츠 행정의 현장이다. 이곳이 정치적 갈등의 장기 점거지로 소비되는 상황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핸드볼경기장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핸드볼은 한국 스포츠사에서 작지 않은 자리를 차지해온 종목이다. 올림픽 메달의 기억, 비인기 종목의 헌신, 여성 스포츠의 성취, 학교와 실업팀을 통해 이어져온 종목 공동체의 시간이 그 안에 남아 있다. 핸드볼경기장은 한국 체육이 대중적 관심의 바깥에서도 어떻게 자기 역사를 만들어왔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런 장소가 정치적 분노의 배경으로 장기간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체육계 전체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올림픽공원 안팎에 자리한 종목단체와 체육 관련 기관들은 정상적인 업무 수행에 상당한 불편을 겪고 있다. 직원들의 출퇴근, 민원 응대, 회의 개최, 경기 운영 준비, 국제교류 업무, 선수 지원 행정이 영향을 받는다. 종목단체는 대개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가진 거대 조직이 아니다. 소수의 실무자가 국내대회와 국제대회, 선수 등록, 지도자 교육, 심판 관리, 정부 보조금 정산까지 감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사무공간의 접근성과 안정성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종목 운영의 기본 조건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침묵이다. 올림픽공원의 이웃인 체육계 관계자들은 왜 이 문제에 대해 좀처럼 말하지 않는가. 종목단체가 겪는 어려움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체육계의 공적 목소리는 충분히 들리지 않는다.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선거 문제는 예민하고, 특정 진영의 주장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으로 비칠 위험도 있다. 하지만 공공체육공간의 정상적 기능 회복을 요구하는 것은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체육인의 권리이자 체육행정의 책임이며, 스포츠 공공성의 문제다.
체육계가 침묵할수록 올림픽공원은 체육의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의 배경으로만 남는다. 핸드볼경기장은 한국 핸드볼의 역사적 장소가 아니라 갈등의 무대 장치로 전락한다. 종목단체의 업무 차질은 개별 기관의 불편 정도로 축소되고, 선수와 지도자, 체육행정 실무자의 일상은 공론장에서 사라진다. 이것이야말로 스포츠가 사회적으로 주변화되는 방식이다. 체육계가 스스로의 공간과 언어를 지키지 못하면, 스포츠의 공공성은 언제든 다른 목적에 의해 밀려날 수 있다.
물론 집회와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선거 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도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완전히 밀어내는 방식으로 행사될 수 없다. 의혹은 제기될 수 있지만, 의혹이 곧 사실이 될 수는 없다. 분노는 이해될 수 있지만, 분노가 곧 공공장소 봉쇄의 권한이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절차의 정당성으로 유지된다.
이번 논란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선거 관리의 실패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축소하는 태도다. 다른 하나는 행정 실패를 근거로 선거 전체를 불법으로 단정하고, 공공 공간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불신을 확대하는 태도다. 전자는 책임을 흐리고, 후자는 공동체를 찢는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절차와 공공성을 훼손한다면, 문제 제기의 정당성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스포츠는 규칙을 전제로 한다. 심판이 잘못했다면 항의할 수 있다. 규정이 미비했다면 고쳐야 한다. 그러나 경기장을 봉쇄하고 다른 선수와 관중의 출입을 막는 순간, 항의는 스포츠의 언어를 잃는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절차가 흔들렸다면 절차를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 불신을 해소하겠다는 행동이 더 큰 불신을 낳아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관위의 엄정한 책임 규명과 공공공간의 정상화다. 동시에 체육계도 더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이것은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찬반이 아니다. 올림픽공원의 공공성, 종목단체의 정상적 업무, 선수와 지도자와 체육행정가의 일상을 지키자는 최소한의 요구다. 선관위의 책임을 묻는 일과 공공체육 공간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일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가지를 함께 말할 때 우리는 진영의 언어를 넘어 민주주의와 스포츠의 언어로 돌아갈 수 있다.
불신은 민주주의의 경고음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경고음이 공동체 전체를 마비시키는 소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선거의 신뢰는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올림픽공원의 공공성도 회복돼야 한다. 그리고 체육계는 이 문제를 남의 일처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올림픽공원이 정치적 갈등의 점거지가 되는 순간, 한국 스포츠의 역사와 현재도 함께 침묵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SELA+는 책을 통해 세상의 팩트를 읽고, 깊이 있는 대화와 사유로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는 북클럽 기반의 지식 공동체입니다. 단순한 읽기를 넘어 텍스트 너머의 가치를 함께 쓰고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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