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이제는 범죄로 다뤄야…피해자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성주원 기자I 2024.10.01 14:01:01

■인터뷰-'n번방 피해자 지원' 박수진 덕수 변호사
성희롱, 현행법상 형사처벌無…피해자 고통
범죄화시 피해자 보호·지원 강화하는 효과도
"스토킹도 경범죄→중대범죄…인식 변화 필요"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그냥 술 따라달라고 했을 뿐인데 성희롱이라고요?” “단톡방에서 동료의 외모를 평가했다고 처벌받나요?” “상사가 보낸 음란한 사진,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희롱 사례들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이러한 행위들은 대부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성희롱 피해자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다.

최근 한 대기업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야한 동영상을 보내고 성적인 농담을 일삼은 사건이 있었다. 피해 직원은 “매일 출근하는 게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이는 성희롱이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피해자의 일상과 직업 수행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가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지난달 30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이 성희롱을 성범죄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성희롱은 형사처벌의 대상인 범죄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며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충분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언어적, 시각적 성희롱의 경우 현행법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 변호사는 “예를 들어 단체톡방이 아니라 가해자들 간의 1대1 개인 메시지 대화에서 언어적 성희롱을 했을 때 피해자에게 직접 도달하게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성폭력처벌법상의 통신매체이용음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어적 성희롱의 경우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도 있지만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 즉 ‘공연성’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법의 공백은 실제 피해자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여론조사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5명 중 1명(22.6%)이 성희롱을 경험했으며, 그중 7분의 1(13.7%)은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박 변호사는 “성희롱은 단순한 인격권 침해를 넘어 성적자기결정권, 인격권, 노동권 등을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1999년 남녀고용평등법이 개정돼 성희롱에 대한 법적 규제가 확립된 후 25년이 지났지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과 행정적 제재만으로는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가 ‘지속적 성희롱의 범죄화’와 함께 ‘피해자 지원 체계 강화’를 제안하는 이유다. 박 변호사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성희롱이나 업무상 위계위력 관계에 있는 주체에 의한 성희롱이라도 우선적으로 범죄화할 필요가 있다”며 “피해자들도 성폭력 피해자와 같은 수준의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희롱이 범죄화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박 변호사는 “우선 성범죄로 다뤄지게 된다면 성희롱 피해자도 수사와 공판 단계에서 성폭력 피해자로서 보호받게 될 것”이라며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전담 재판부에서 사건을 다루게 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 기준도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범죄 전담 수사관과 재판부가 성희롱 사건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면 사법절차 안에서 피해자들이 더 적절한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박 변호사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성희롱 범죄화에 대해 형벌 남용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과거 스토킹도 경범죄로 취급되다가 22년 만에 특별법이 제정되고 이제는 중대 범죄로 인식되고 있다”며 “지속적인 성희롱 역시 그 심각성, 불법성 등을 고려할 때 범죄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반박했다.

성희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법 개정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박 변호사는 “일부 성희롱을 범죄화하고 피해자 지원 체계를 강화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성희롱이 타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범죄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가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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