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1일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여수신 계정 추이 통계가 나온다. 대출과 예금 잔액 추이를 관찰하고 시중 자금의 흐름을 읽는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대출의 잔액이 급격하게 늘었다. 코로나19로 기업들의 자금 상황이 그만큼 급박했다는 뜻이다. 같은 해 하반기에는 신용대출이 튀었다. 싸진 대출 금리에 주식 시장까지 과열되면서 은행 신용대출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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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3월 요구불 예금 통계가 각 매체마다 다르게 나왔다. 이데일리는 617조4389억원으로 계산했고, 일부 매체에서는 656조4840억원으로 집계했다. 각 은행에서 공개한 같은 여수신 계정 수치를 보고 매체마다 39조원 넘게 차이가 나게 집계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 MMDA를 바라보는 기준에서 차이에서 비롯
원인은 MMDA(시장금리부 수시입출식 예금)에 있었다. 하나은행은 요구불예금 범주에 MMDA를 포함시켜 놓고 있다. 다른 은행은 MMDA를 요구불예금으로 포함하지 않았다.
각 은행별로 MMDA를 바라보는 기준이 다른 이유는 MMDA가 갖고 있는 모호성에 찾아볼 수 있다. MMDA가 저축성 예금과 요구불예금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MMDA의 출시 목적은 증권사 CMA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이다. 당초 취지는 잠시만 맡겨도 정기예금 못지 않은 연율 이자를 준다는 점에 있다. 이자율로 따지면 저축성 예금에 가깝지만, 수시입출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요구불 예금으로 분류될 수 있다.
쉽게 말해 하나은행은 MMDA가 갖는 수시입출금의 성격에 주목해 요구불예금 범주에 넣은 것이고, 다른 은행들은 이자율에 초점을 맞춰 요구불예금에 MMDA를 넣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617조원의 요구불 예금 계산과 656조원 요구불예금의 차이는 하나은행의 MMDA 잔액이 더해졌는가 더해지지 않았는가의 차이다. ‘656조원 = 5대 은행 요구불 예금 + 하나은행 MMDA’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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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에 따르면 MMDA는 자산가가 주로 이용하는 상품이다. 은행 금리에 민감한 자산가들이 임시로 돈을 맡겨 놓기 위해 MMDA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른바 현금부자들이 애용하는 은행 상품이 MMDA이다.
이 때문에 현금 수요가 많아지는 연말이면 MMDA 잔액이 일시적으로 줄었다가 2~3월 들어 늘어나는 현상이 반복되곤 했다.
현금부자들이 MMDA를 파킹통장(임시로 돈을 맡겨놓는 통장)으로 이용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MMDA가 최소 1000만원 이상 돼야 보통예금보다 높은 이율을 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수천만원 현금이 없는 이용자라면 굳이 MMDA나 일반 수시입출금 예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자연스럽게 현금이 많은 자산가나 법인이 MMDA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 부자들의 통장은 ‘관망’을 선택했다
하나은행은 왜 MMDA를 요구불예금으로 분류했을까? 그만큼 하나은행 이용자들이 빈번하게 MMDA 사용을 많이 한다는 데 있다. 하나은행의 MMDA 잔액은 다른 은행과 비교하면 매우 많은 편이다.
하나은행 MMDA 잔액이 많은 이유는 또다른 이유는 하나은행이 전통적으로 VIP 마케팅과 영업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은행 PB(프라이빗뱅킹)의 강자라는 얘기다.
은행권 관계자는 “하나은행이 VIP 영업을 잘하다보니 그곳 은행과 거래하는 자산가들도 많다”면서 “MMDA에서 현금을 운용하는 부자들도 자연히 많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의 지난 3월 MMDA 증가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 17.7% 증가했다. 전통적으로 2~3월 계절적 요인으로 MMDA 잔액이 급격히 늘기도 하지만 올해 증가 규모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시중은행의 한 PB는 “부자들이 대기성 자금을 입금하려는 수요가 강해졌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면서 “부동산 시장이 주춤하고 주식 시장마저 상승 추동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부자들은 투자보다는 관망을 선택한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은행의 MMDA나 요구불예금에서는 쉽게 알 수 없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국내 최대 가계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등의 MMDA 증감률은 평소와 크게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39조원은 각 은행들이 보는 MMDA의 관점의 차이이자, 갈 곳을 찾지 못한 일부 부자들의 돈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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