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여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정부는 내년부터 관리재정수지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기로 했다. 이를 재정준칙의 준거로 삼아 22대 국회에서 법제화를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부 지출의 기본 방향은 민생에 뒀다. 특히 약자복지에 초점을 맞춘 선별지원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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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2025년 예산안’과 ‘2024~2028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 총지출 증가율은 3.2%로 올해(656조 6000억원·본예산 기준) 대비 0.4%포인트 늘었다. 올해 증가율(2.8%)이 역대 최저치였던 점을 감안하면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 8.7% △박근혜 정부 4.0% △이명박 정부 5.9% 등 지난 정부의 평균 증가율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이를 위해 재량지출 증가율을 0%대로 묶고, 협업예산 편성과 함께 3년 연속 20조원대의 지출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정부가 이처럼 고강도 지출 관리에 나선 건 대규모 세수 결손 우려가 올해도 이어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경기 부진으로 인해 올 상반기 법인세가 16조 1000억원이나 덜 걷혔고, 국세수입 예산 대비 진도율(45.9%)은 최근 5년 평균치(52.6%)를 밑돌았다. 정부는 기업 실적 호조에 따라 내년에는 법인세(10조 8000억원)를 비롯한 국세수입이 올해 예산 대비 15조 1000억원 증가할 거라고 예상했다. 다만 올해와 세수 흐름이 비슷한 2013년과 2014년을 고려할 때 연간 결손 규모가 최소 10조원대로 추정되고 있어 이를 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입이 줄었으나 지출도 조이면서 나라살림 적자 규모는 정부가 추진해온 재정준칙 범위 내로 편성됐다. 내년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은 2.9%로, 현 정부가 집권 3년 동안 세 차례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적자비율을 3% 이내로 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향후 관리재정수지는 △2026년 -2.7% △2027년 -2.5% △2028년 -2.4%로 -3% 이내에서 단계적 개선하고 국가채무도 4년 내 50%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그간 재정준칙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현 정부조차 스스로 세운 기준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은 입법 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돼왔다. 지난해 우리나라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로 재정준칙 상한선(3%)을 초과했고, 올해 전망치도 3.6%에 달하는 상황이다. 현재 재정준칙은 의원 입법의 형태로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됐다.
유병서 기재부 예산총괄정책관은 “세수 때문에 재정수지가 오르락내리락하지만 국가채무는 50% 이하를 아직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라 이 안에서 다른 재원들을 마련하면 정책 과제들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담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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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수급자·노인·장애인 대상 사업 등 꼭 필요한 분야에 재정 투입을 확대하겠다는 게 내년 예산을 편성한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한 복지 예산은 249조원으로 올해 대비 4.8%(11조 4000억원) 늘었다. 전체 예산의 36.8% 차지해 지출 12대 분야 가운데 비중도 가장 컸다.
생계급여 최대지급액을 올해보다 연간 6.42%(141만원·4인가구 기준) 올리는 등 저소득층 지원엔 20조 8000억원을 투입한다. 장애인 지원 예산 총액은 6.6% 늘린다. 고용장려금 수혜인원은 63만 3000명에서 75만 6000명으로 확대하고 최중증 발달장애인 긴급돌봄센터 2개소, 모바일 장애인 등록증을 구축하는 사업도 처음 실시한다. 고령화 시대에 맞춰 노인일자리를 역대 최대인 110만개까지 늘리는 데는 2조 1847억원을 배정했다. 한부모 가정을 위한 양육비 국가 선지급제를 도입하는 데는 162억원을 추가 투입한다.
취약계층의 사회 이동성 제고를 위한 예산은 13조 2000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근로를 통해 수급대상에서 벗어나면 최대 150만원의 자활성공금을 지급하고, 저소득층 희망저축계좌는 정부 지원금을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인상한다. 대학생들이 경제적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연 최대 240만원의 주거장학금을 신설하고 근로장학금 수혜인원은 60만명 더 늘리기로 했다.
일각에선 내년 경상성장률(4.5%)을 밑도는 총지출 증가율을 설정한 건 내수 부진이 두드러지는 상태에서 재정이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이 늘어난다고 내수가 좋아지는 낙수효과 경로가 보이지 않고 재정정책도 소극적이어서 내수가 살아날 만한 부분이 없다”고 우려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윤석열 정부는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정부가 해야 할 것을 확실히 하되 민간 중심으로 경제 활력을 일으키는 부분은 간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해왔다”면서 “이런 과정에서 재정을 바라본다면 국가의 역할에선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