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대표는 충남 금산군 출신으로 대전 보문고와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에서 학보사 기자 활동을 하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1989년엔 반미구국결사대에 참여, 노태우 대통령 방미 등을 반대하며 주한 미국대사 관저를 점거했다가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엔 지금의 지역구인 마포구에서 길잡이학원을 운영하며 학원 사업가로 지역에 이름을 알렸다.
정 대표는 2002년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며 정치에 발을 디뎠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그는 지금까지 서울 마포구 을에서만 네 번(17·19·21·22대) 당선됐다.
정 대표는 초선 때부터 언론개혁,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 등을 주도하며 강한 개혁적 성향을 보였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때엔 ‘당 대포’를 자처하며 대여 공세의 최전선에 섰다. 특히 윤석열 정부 시절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으며 쟁점 법안 처리와 3특검법(내란·김건희·채 해병 특검법) 입법, 그리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정 대표는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도 자신이 당선되면 3개월 안에 검찰청 폐지를 포함한 검찰·사법·언론개혁을 마치겠다고 공언했다. 정 대표 주변에도 최민희·민형배·장경태·양문석·한민수 등 당내 강경 개혁파 의원들이 포진했다.
정 대표는 직설적인 성격 탓에 이따금 설화에 휘말렸다. 2015년 같은 당이었던 주승용 전 의원에게 “(최고위원직을)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발언했다가 이듬해 총선에서 공천 배제되는 아픔을 겪었다. 2021년엔 사찰 관람료를 ‘봉이 김선달’에 빗댔다가 불교계 발발을 샀다. 이 때문에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있던 당으로부터 탈당 권유를 받았다.
정 대표는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 이 대통령을 “동지”로 부르며 “이재명이 곧 정청래”라고 했다. 두 사람은 2007년 정동영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현 통일부 장관)를 함께 도우며 인연을 맺었다.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일 땐 수석 최고위원으로 호흡을 맞추며 이 대통령의 당 대표직 연임 등을 뒷받침했다.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 정 대표는 “싸움은 정청래 당 대표가 할 테니 이재명 대통령은 일만 하시라”고 강조했다.





![서초구 아파트 19층서 떨어진 여성 시신에 남은 '찔린 상처' [그해 오늘]](https://image.edaily.co.kr/images/vision/files/NP/S/2026/03/PS26031100013t.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