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추산 전국 LP 매장은 50여곳. 업계는 연간 시장규모가 50억~100억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골목시장에 대기업인 현대카드가 진입하면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현대카드는 지난달 10일 LP 음반 4000여종·CD 음반 8000여종을 갖춘 매장인 ‘바이닐&플라스틱’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에 열었다.
기존 영세 LP 음반매장들은 전국음반소매상연합회(이하 연합회)를 급히 결성했다. 이들은 지난달 24일부터 매일 오후 6~10시, 바이닐&플라스틱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진행 중이다. 지난 일요일에는 50여명이 모여 집회도 열었다. 화들짝 놀란 현대카드는 중고 LP 음반판매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LP 음반 할인율도 20%에서 10%로 줄인다고 했지만 영세 상인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중고 LP 판매 중단해도 영세 매장들은 결국 고사할 것
애초 현대카드의 LP 음반판매 사업 진출은 사업 자체보다 문화마케팅의 일환이었다. 문화지원사업의 일종으로 시작한 사업이 영세 자영업자 생존에 치명타를 날린 것이다.
회현동지하상가에서 40년째 매장을 운영하는 신재덕(61)씨는 “현대카드가 LP 음반판매를 시작한 이후 회현상가 LP 음반매장 매출이 최소 30%에서 많게는 절반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청년 사업가들이 운영 중인 홍대 인근 LP 음반매장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곳에서 3년째 LP 음반매장을 운영 중인 유지환(32)씨는 “평소 하루 20만~30만원이던 매상이 현대카드의 LP 음반판매 시작 후 2만~3만원대로 떨어졌다”며 “한 달 임대료만 198만원에 전기료 등 운영비용을 생각하면 앞으로 매장을 운영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들 영세 LP 음반매장 사장들은 “‘문화지원’을 하려면 말 그대로 ‘지원’역할에 충실해 LP 음반문화를 보급해야한다”며 “대기업이 대형매장을 만들어 골목상권을 고사시키는 게 지원이냐”고 토로했다. 현대카드의 중고 LP 음반판매 중단에 대해서도 “회현상가만 해도 신규 음반 비율이 30%가 넘고 청년 사업가들이 모인 홍대 매장 같은 경우에는 신규 음반비율이 80%이상”이라며 “영세 LP 음반매장이 고사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현대카드 측은 “현대카드는 중소 LP소매점과 경쟁 관계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LP 소매점들과 함께 음반 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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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섭 중기청장은 지난달 25일 ‘중소기업 리더스포럼 정책토론회’에서 “대기업 골목상권 침해 땐 직을 걸고 막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업집단 기준완화(5조→10조원)로 인해 소상공인 피해가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에서다. 현대카드의 LP 음반 시장 진입이 대기업 기준 완화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주 청장의 발언이 나온 지 채 한 달도 안되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논란이 불거졌다.
현재 중기청에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소상공인지원국이 있다. 하지만 LP 음반매장·카카오 헤어샵 등 일련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손성동 중기청 소상공인지원국 사무관은 “현재 대형마트나 SSM(기업형 슈퍼마켓) 관련 조정이 주로 들어오고 있다”며 “최근 골목상권논란에 있어서는 상생협력법·중소기업적합업종 등 사업조정 요건이 되야 조정에 나설 수 있을 것”고 말했다.
하지만 연간 시장규모가 50억~100억원 밖에 안되는 LP 유통사업을 두고 각종 법령이나 중기적합업종을 논의하기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김지윤(51) 연합회 회장은 “저희 같은 사람들은 평생 음악만 알고 살아 세상물정에 어둡다”며 “그간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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