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찾은 홍콩 ‘쇼핑 성지’ 코즈웨이베이는 광군제(11월 11일) 프로모션 열기로 들떠 있었다. 글로벌 스트리트 브랜드가 늘어선 팍샤(Pak Sha) 로드 중심부에는 마뗑킴·마리떼프랑소와저버·마르디메르크디 등 이른바 ‘3마’가 나란히 자리했다. 스투시·칼하트 같은 강력한 글로벌 브랜드 사이에서도 한국 특유의 미니멀·스트리트 감성이 또렷이 드러났다. 몇 년 전만 해도 존재감이 미약했던 K패션이 중화권(홍콩·마카오·대만) 젠지(GenZ) 세대 속으로 빠르게 침투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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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마의 글로벌 성공 방정식은 명확하다. 팝업스토어(임시매장)로 초기 반응을 확인한 뒤 정규 매장으로 전환하는 단계적 침투 전략이다. SNS에서 K팝 스타 착용 컷이 퍼지며 인지도가 먼저 형성되고, 이후 오프라인에서 체험·구매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구축했다. 하고하우스가 운영하는 마뗑킴의 올해 하반기(6~10월) 중화권 매출이 상반기 대비 49% 늘어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중화권에서 자리를 굳힌 뒤 유럽·미주 등 주요 지역으로 확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K패션 확산은 비단 3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형 패션사들도 지금을 골든타임으로 보고 해외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진 브랜드가 SNS 기반 빠른 확산력으로 초기 시장을 넓힌다면, 대형사들은 브랜드 자산과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안정적 성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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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도 성장 축으로 떠올랐다. 무신사는 국내 브랜드를 묶어 해외에 ‘연합 진출’시키는 구조로 물류·마케팅 인프라를 제공하며 진입장벽을 낮췄다. 이를 기반으로 자체 해외 사업도 확대해 이달 중국 상하이에 첫 해외 오프라인 스토어를 열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해외 공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K패션 전반이 초반부터 글로벌을 염두에 두는 체질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산업 기반도 비교적 탄탄하다는 평가다. 섬유·봉제·디자인·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ODM(제조자개발생산) 등 생산 전 과정에서 경쟁력을 갖췄고, 국내 제조사는 글로벌 스포츠·패션 브랜드 생산을 맡을 만큼 기술력도 인정받는다. 트렌드 대응 속도와 품질 대비 가격 경쟁력 역시 업계가 꼽는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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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점은 K패션의 미래를 이끌 중소·신진 브랜드에 집중된다. 대기업은 자체 법무·네트워크로 대응하지만, 해외 공략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은 통관·관세·세금 등 기본 절차에서도 난관이 반복된다. 디자인 도용 피해에 대한 대응은 더디고, 해외 전시회 참가비·마케팅 비용도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다. 업계는 단계별 성장 지원, 전문 인력, 해외 리스크 전담 조직 마련을 요구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국내 패션 예산은 연 500억원에도 못 미친다. 산업 분류와 지원 체계가 사실상 비어 있다. 해외 박람회·마케팅 등 초기 진입 지원이 탄탄한 K뷰티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업계가 요구해온 패션산업진흥법은 발의만 됐을 뿐 심의가 멈춘 상태다. 이 법안은 산업의 체계적 육성과 창작 활동 지원, 해외 진출 지원, 지식재산권 보호 등을 마련하는 내용이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패션은 식품·화장품보다 현지 소비자와의 접점 관리가 더 중요하다”며 “중소 브랜드 육성에 맞춘 전담 조직과 플래그십 공간, 현지 매체 활용 등 지속적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해외 시장은 자리는 잡기 어렵지만 한 번 자리 잡으면 확산 속도는 빠르다”며 “지금 전략을 정비하지 않으면 K패션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