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부츠 신은 롯데홈쇼핑, 한남동서 미래를 시험하다[르포]

김지우 기자I 2025.11.18 07:00:00

프랑스 아웃도어 '에이글'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홈쇼핑, 3년간 에이글 국내 독점 유통
TV 시청 감소 타격에 판권 사업 '드라이브'
"판매채널 넘어 브랜드 인큐베이터로 거듭날 것"

[이데일리 김지우 기자] 한강진역에서 이태원으로 걸어 올라가는 길, 커다란 붉은 장화 한 켤레가 시선을 붙잡는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롯데홈쇼핑이 꾸려 놓은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에이글(AIGLE) 팝업스토어의 상징물이다.

평일 오후, 이 곳을 지난 사람들의 발걸음이 잠시마다 끊긴다. 유리 파사드 앞에 놓인 붉은 고무부츠 조형물을 스마트폰에 담느라 사람들은 한 번씩 고개를 돌리고 셔터를 누른다.

1853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에이글은 프렌치 감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아웃도어 브랜드다. 특히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드는 천연 고무부츠가 대표 아이템이라는 점에서 한남동 팝업 앞 ‘빨간 부츠’는 이 브랜드의 자기소개서 같은 오브제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에이글’ 팝업스토어 전경 (사진=김지우 기자)
매장은 2개 층으로 나뉜다. 1층은 산악 지형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함께 재킷, 플리스, 러버부츠 등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체험형 공간으로 꾸며졌다. 눈에 띄는 건 프랑스 패션 아이콘 잔느 다마스가 론칭한 브랜드 ‘후즈(ROUJE)’와 협업한 모자·가방 같은 컬래버레이션 라인이다. 옆에는 고어텍스 헤비다운 재킷, 폴라텍 풀 집업 등 겨울 아우터와 러버부츠가 최대 40% 할인 가격표를 달고 걸려 있다.

2층은 에이글 제품뿐 아니라 롯데홈쇼핑의 글로벌 패션 온라인 편집숍 아프트(APTE)가 큐레이션한 여러 브랜드가 한 공간을 채운다. 프랑스 레인웨어 브랜드 플로트, 시계 브랜드 랩스, 비건 패션 브랜드 아파리 등 8개 브랜드의 상품이 빽빽이 진열돼 있다. 한 팝업 안에서 프렌치 아웃도어와 유럽 감성 브랜드를 한꺼번에 훑어볼 수 있는 셈이다.

에이글 팝업스토어 내부 전경 (사진=김지우 기자)
지난달 27일 문을 연 이 팝업에는 하루 최대 150명까지 다녀간다. 한강진·이태원 라인이라는 위치 덕분에 외국인 비율도 적지 않다.

최욱진 롯데홈쇼핑 에이글 MD는 “한국에선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프랑스·중국·일본·홍콩·대만 등지에는 3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대형 브랜드”라며 “외국인 손님 중에는 자국에서 이미 접해 보고, 한국에서 세금 환급을 고려해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한남동 팝업스토어는 오는 12월 31일까지 운영된다.

“그때 그 레인부츠 맞아요, 근데 이번엔 프랑스판입니다”

에이글의 한국과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대 초, 국내에는 라이선스 방식으로 상표권만 빌려와 제작한 제품들이 유통됐다. 골드윈코리아(현 영원아웃도어)가 2005년 라이선스 브랜드로 전개하면서, 2010년대 초반에는 컬러풀한 레인부츠 러버부츠가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크게 히트했다. 빗길마다 눈에 띄던 알록달록 장화의 상당수가 바로 이 에이글 로고를 달고 있었다.

2016년에는 국내에서 라코스테를 전개하던 동일그룹이 에이글 본사와 합작법인 동일에이글을 세워 다시 한 번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하지만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경쟁 심화와 트렌드 변화 속에서 입지는 점점 좁아졌고, 결국 철수를 선택해야 했다.

이번 재도전에서 선봉에 선 것은 롯데홈쇼핑이다.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9월, 에이글의 모회사인 MF브랜즈그룹과 손잡고 3년간 국내 단독 판권 계약을 맺었다. 현지에서 제작된 정식 ‘본사 상품’을 직수입하는 구조다. 프랑스 본사에서 바로 온 정통 버전인 셈이다.

에이글 팝업스토어 내부 전경.(사진=김지우 기자)
프리미엄 아웃도어로 다시 서다

요즘 아웃도어 시장의 키워드는 러닝·등산·하이킹이다. MZ세대까지 관심을 보이면서 프리미엄 아웃도어 시장은 다시 확장 중이다. 에이글이 노리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대표 가격대는 아우터 30만~150만원, 플리스 20만~40만원, 상의는 10만원대 초반으로 형성돼 있다. 단순히 ‘비싼 옷’이 아니라, 한 벌로 여러 계절을 버틸 수 있는 설계가 강점이다. 내피 패딩 조끼·플리스와 겉감 아우터를 지퍼로 연결해, 기온에 따라 조합을 바꿔 입을 수 있는 시스템을 내세운다.

국내에서 이미 인기가 검증된 레인부츠 카테고리도 다시 한 번 키운다는 계획이다. 방수 기능을 앞세운 천연 러버부츠를 전면에 내세워, ‘비 오는 날 떠오르는 부츠’ 이미지를 다시 가져오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가격 장벽은 숙제다. 롯데홈쇼핑은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엔트리 라인’을 늘리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봄·여름 시즌 출시된 방수·발수 기능성 아우터 레인팩이 대표적이다. 최 MD는 “본사와 협의해 기술력은 유지하되 가격을 낮춘 상품을 계속 선보이려 한다”며 “내년에는 엔트리 라인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TV 홈쇼핑 둔화 속 ‘미래 먹거리’ 찾기

현재 에이글의 국내 오프라인 거점은 롯데백화점 잠실점 한 곳이다. 여기에 한남동 팝업이 브랜드 이미지와 반응을 시험하는 실험장 역할을 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내년에 매장을 3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복합쇼핑몰이나 명동·한남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상권에 단독 매장, 이른바 플래그십 스토어를 내 브랜드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겠다는 구상이다.

에이글은 롯데홈쇼핑 입장에서 단순한 수입 브랜드가 아니다. TV 홈쇼핑 본업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꺼내든 신사업 카드다.

롯데홈쇼핑은 2023년, 해외 패션 브랜드 판권을 인수해 직수입·유통하는 사업을 담당하는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지난해부터는 에이글을 포함한 9개 해외 브랜드를 온·오프라인 채널에서 함께 판매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글로벌 패션 온라인 편집숍 아프트를 열어, 자사몰 안에 해외 브랜드를 묶어 보여주는 ‘큐레이션 플랫폼’으로 키우는 중이다.

수입 브랜드 판권 사업은 TV 시청 감소로 성장세가 둔화된 홈쇼핑 업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새 먹거리’ 모델로 꼽힌다. 롯데홈쇼핑에 따르면, 올해 1~10월 수입 브랜드 판권 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자체 온라인몰 매출도 월평균 50%씩 성장하며 가팔라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에이글을 비롯한 수입 브랜드를 TV 방송 사이사이에 짧은 쇼핑 콘텐츠나 브랜드 영상 형태로 노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수입 브랜드 판권 사업은 아직 시작 단계지만, 에이글을 계기로 해외 브랜드 협업 포트폴리오를 넓혀 유통 플랫폼이자 브랜드 인큐베이터로 거듭나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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