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날 더워지는데 냉면 한 그릇 먹기도 겁나네요. 월급 빼고 다 올랐어요.”
‘냉면 마니아’를 자처하는 박형재(44)씨는 최근 서울 중구 유명 A냉면집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작년까지 1만6000원이었던 회냉면 가격이 1만7000원으로 뛴 것이다. 박씨는 “봄부터 냉면 먹는 게 사는 낙인데 살 떨려서 먹을 수가 있나”라며 “회냉면은 비싸서 이젠 물냉면이나 먹어야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A냉면집 사장 이모씨는 박씨에게 “우리도 매출 빼고 다 올랐다”며 “식자재비, 운송비, 인건비 등 다 올랐는데 가격을 안 올릴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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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서민 음식’ 칼국수도 마찬가지다. 15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칼국수집 가격표에는 ‘8000원’의 맨 앞자리 숫자 ‘8’이 다소 어색한 글씨체로 덧씌워져 있었다. 사장 B모씨는 “지금대로면 도저히 유지가 안 돼 어제부터 7000원에서 8000원으로 올렸는데 가격표를 바꾸면 또 돈이 들어가 앞자리만 고쳤다”면서 “간장, 기름, 소주, 하다못해 휴지(냅킨)까지 안 오른 게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실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내 외식업계는 국제 곡물가격 상승에 바로 영향을 받았다. 17일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3월 서울지역 냉면 평균 가격은 9962원으로 전년 대비 9.7% 상승했다. 1만원대 돌파는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서울지역 칼국수 평균 가격은 8.8% 오른 8115원을 기록했다. 서울의 칼국수 가격이 8000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밖에 △자장면(9.4%) △비빔밥(7.0%) △김치찌개백반(5.7%) △김밥(5.2%) 등도 높은 연간 상승률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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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분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 밀 수출 물량 29%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수출항에 묶여 있다”며 “약 30%의 물량이 오랫동안 못 나오고 있으니 나머지 국가가 조달하는 70%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횟집은 유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았다. 횟감의 육로 운송비가 올랐고, 기름값이 아까워 조업을 나가는 배가 줄어들면서 수산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횟집을 하는 김모씨는 “어제 노량진 수산시장에 나가 보니 청어가 평소 5분의 1 수준인 달랑 10박스만 나왔더라”라며 “요새 고기잡이 배가 한 번 출항하는데 기름값이 1000만원정도 든다는데 이게 부담스러우니 50척 나갈 게 10척만 나간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출항해 봤자 기름값도 건지기 힘들기 때문에 조업을 나가지 않는 배가 늘고, 어획량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횟감 가격이 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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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작년부터 밥상물가 상승이 시작됐는데 이제 외식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라며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식자재뿐만 아니라 운송비 등 모든 분야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공급망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데 국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태라 정부도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