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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목사는 1941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태어나 미국 남부의 인종분리정책 아래에서 성장했다. 그는 미국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측근으로 활동했으며, 1968년 킹 목사가 암살됐을 당시에도 인근에 있었다.
잭슨 목사는 1970년대 초 민권 단체 ‘오퍼레이션 푸시’를 설립했다. 1984년에는 여성·성소수자 권리까지 포괄한 ‘무지개 연대’를 창립해 미 주요 시민 운동의 중심에 섰다. 1984년과 198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해 1988년 경선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선출되기 전까지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유력한 흑인 지도자로 평가받았다.
잭슨 목사는 1980~1990년대 시리아, 쿠바, 이라크 등에서 억류된 미국인의 석방을 중재하는 등 비공식 외교 사절 역할도 수행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는 아프리카 특사로 활동했고, 2000년에는 미국 최고 민간 훈장인 자유훈장을 받았다.
잭슨 목사는 2017년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 이후에도 활동을 이어가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확산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운동에도 참여했다.
잭슨 목사는 1986년과 2018년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한국의 넬슨 만델라’라고 칭했으며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듯 비무장지대(DMZ)도 무너질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그를 잘 알고 지냈다. 그는 개성과 투지, 현실감각을 지닌 좋은 사람이었다. 제시는 이전에 거의 없었던 압도적 존재의 사람”이라며 잭슨 목사를 추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잭슨 목사와 그의 단체에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의 트럼프 빌딩에 사무공간을 제공한 적도 있다고 언급했다.
로이터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노예 제도 관련 전시물 철거하고 노예제를 옹호했던 남부 연합 장군 동상을 복원하는 등 수십년에 걸친 미 흑인 시민권 운동의 유산을 되돌리는 시점에 잭슨 목사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