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민정 기자] 러시아가 동유럽을 관통하는 가스 송유관사업인 `사우스 스트림(South Stream) 프로젝트`를 폐기하고 터키를 통하는 새로운 가스관을 건설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 경제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터키를 통해 EU 국가들을 견제하겠다는 계산이다.
1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터키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사우스 스트림 프로젝트를 폐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앙카라에서 타입 에르도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불가리아로부터 송유관 건설에 필요한 허가를 받지 못했다”며 “불가리아 경계선에서 멈춘 사업에 계속 투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U가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 건설을 원하지 않는 만큼 실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갈등이 불거지면서 우크라이나를 우회해 남동 유럽지역에 가스를 보내기 위한 목적으로 2000억달러를 투자해 러시아~불가리아~세르비아~헝가리~오스트리아를 거치는 가스관을 건설하는 사우스 스트림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러시아는 유럽 지역의 천연가스 공급의 30% 이상을 담당하는데, 흑해 아래로 통하는 가스관을 통해 유럽 1년 소비분의 10분의1 정도를 운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EU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단행하면서 사우스 스트림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의 고위 관계자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고, 제재에 동참한 불가리아는 송유관 건설 작업을 중단됐다.
푸틴 대통령은 대신 러시아~터키~그리스를 통하는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로 했다. 이 가스관을 통해 1년에 약 630억㎥ 규모의 가스를 남부 유럽지역에 공급할 계획이다.
푸틴은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에 대한 터키의 독립적인 결정을 가치있게 평가한다”며 “터키는 다른 누군가(유럽 또는 미국)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희생하지 않았다“고 추켜세웠다.
미국과 유럽 등이 부과한 경제 제재에 시달리는 러시아는 자국에 경제 제재를 부과하지 않은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터키도 그 중 하나다. 러시아는 앞서 중국과 대규모 천연가스 공급 딜을 성사시켰다. 이 과정에서 터키도 톡톡히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러시아는 앞서 내년 1월부터 블루스트림을 통해 터키로 가는 천연가스 규모를 30억㎥로 늘리고 가격도 6% 인하해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푸틴은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이 유럽에서 다른 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으로의 대규모 천연가스 공급 계획이 실현되지 않고 있고 터키는 상대적으로 에너지 수요가 적기 때문에 러시아가 가장 수지맞는 유럽 시장을 포기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실 터키와 러시아의 정치적인 관계는 별로 좋지 않다. 러시아는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있지만, 터키는 알아사드 대통령 축출을 위해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전 터키 외교관을 지낸 시난 울젠 이스탄불 경제·외교 센터 대표는 “터키와 러시아의 정치적인 관계는 지역적인 이슈에 대해 입장이 상이하면서 원만치 못하다”고 진단하면서 “다만 러시아와 터키는 정치적인 도전들이 경제 파트너십을 맺는것을 방해하도록 두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푸틴이 앙카라에 도착한 1일 터키가 속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터키에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젠 스톨텐버그는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와 터키와의 관계 강화와 관련, “(러시아처럼)국제법을 어겼을 경우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더 많은 국가가 제재에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