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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 및 근대기의 민족운동, 해방 후 이데올로기 사건 현장을 담고 있어 역사적·사회적 가치가 크다.
집터 자리는 영구하해(靈龜下海·신령스런 거북이가 바다로 내려오는 형국) 중 거북의 머리에 해당하는 길지로 전해지며 고택을 ‘거북정’이라고 별칭하기도 했다.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사당 등 총 6동으로 구성됐다. 주변에는 서당의 기능과 접객, 제실의 역할을 한 삼의당(三宜堂)과 문중 내 효열을 기리기 위해 1880년 세운 광주이씨효열문(廣州李氏孝烈門)도 있어 고택의 민속적 가치를 더한다.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갑주와 갑주함’은 1975년 온양민속박물관 개관 준비 당시 박물관 설립자 구정 김원대(1921~2000) 선생이 지인의 집안에 전해오던 유물을 구입해 소장해온 것이다. 갑옷과 투구뿐 아니라 보관함 등 부속품까지 온전히 남아 있다.
갑주와 갑주함 일괄은 19세기 후기 제작품으로 추정된다. 정교하고 수준 높은 공예기술로 만들어져 왕실 의장용 또는 전시용으로 제작·사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갑옷은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두루마기형 전갑(氈甲)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갑옷의 겉감에 둥근 두정(금속으로 만든 둥글납작한 장식) 장식과 금속으로 만든 사조룡(발가락이 4개 달린 용), 호랑이, 여의주 등을 붙여 장식됐다.
투구는 정수리 장식(幹柱), 투구감투, 목을 보호하기 위한 드림 부분으로 구성됐다. 둥근 감투 부분은 금속 바탕에 무늬를 은입사(銀入絲)하고 금속으로 세밀하게 제작한 봉황과 사조룡 모양 장식을 붙여 장식됐다.
전통 목칠 기법으로 제작된 갑주함은 위아래에 투구와 갑옷을 각각 분리 보관하도록 설계된 점이 특징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이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발히 활용될 수 있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등과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며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민속문화유산을 새롭게 발굴·지정하는 적극행정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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