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적 주제 탐구…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 세계는?

김미경 기자I 2025.10.09 22:57:36

"절망과 희망, 묵시록적 공포 속 예술의 힘"
종말·파국 치닫는 인간의 불안 그려
긴 문장과 난해한 문체가 특징
대표작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파국으로 치닫는 종말을 그리면서도 예술적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작가다.

마침표 없는 긴 문장과 난해한 문체로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과 소외를 다룬 작품을 써왔다. 다양한 사건이나 인물보다는 몰락한 삶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악순환을 이루는 절망의 묵시록적 주제와 정서를 특유의 문체와 형식으로 담아낸 소설가다.

20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사진=AFP/연합뉴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1985년 ‘사탄탱고’로 데뷔했다.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전쟁과 전쟁’, ‘뱅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 대표 작품을 통해 인생의 절망과 고통, 타락과 구속, 전쟁, 반복성 등의 주제를 탐구해왔다

대표작 ‘사탄탱고’(1985)는 공산주의가 붕괴하던 1980년대 헝가리를 배경으로 1년 반 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 이리미아시가 마을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몰락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고 쳇바퀴에 포박돼 영원한 악순환을 이루는 과정을 절망의 묵시록으로 그려냈다. 이 작품은 헝가리 대표 영화감독 벨라 타르를 통해 1994년 7시간여에 달하는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영화사(史)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남아 있다.

미국의 대표 작가 수전 손택은 그를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으로 일컫기도 했는데 ‘저항의 멜랑콜리’(1989)는 그의 묵시록적인 공포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마침표 없는 긴 문장이 특징이다. 몽환적인 장면과 기괴한 캐릭터를 활용해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잔인한 투쟁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쉼표와 만연체로 이뤄진 길고 복잡한 문장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이러한 문장은 독자에게 불편함을 주는 동시에 작품 속 인물들의 혼란스럽고 암담한 현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평가를 받는다.

소설 ‘전쟁과 전쟁’(1999)은 전쟁에 의해 파괴된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잃고 갈등하는지를 탐구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이브라힘은 전쟁의 지속성과 인간의 무의미한 싸움을 묘사하며, 인간의 불안과 고통을 깊이 전한다. 인간 삶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20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사진=AFP/연합뉴스).
작가는 1954년 헝가리 줄러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법학과 헝가리문학을 전공했고 1987년 독일에서 유학했다. 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그리스·중국·몽골·일본·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체류하며 작품을 써왔다.

헝가리 공산주의 체제에서의 경험과 1987년 서베를린에 유학 간 후 시작한 여행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헝가리 최고 권위의 문학상 코슈트상과 산도르 마라이 문학상을 비롯해 독일의 베스텐리스테 문학상,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 스위스 슈피허 문학상 등을 받았다. 2015년 ‘사탄탱고’를 통해 헝가리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받았다. 고골, 멜빌과 같은 대문호와 자주 비견되며 매년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도 거론돼 왔다.

한편 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 시간)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에 대해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게 만드는, 강렬하고도 예지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헝가리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2002년 케르테스 임레(1929~2016) 이후 23년 만이다.

노벨위원회 의장인 안데르스 올손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은 폭력과 아름다움이라는 ‘불가능한’ 결합을 통해 독자들을 예측 불가능한 세계로 이끈다”며 “그의 문학이 종말론적 서사를 넘어 예술적 창조의 불가해한 행위까지 아우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수상자 발표 직후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스웨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매우 기쁘고 평온하면서도 긴장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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