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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11월 프랑스 파리 교외 도시에서 태어난 들롱은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동네 영화관을 운영하던 아버지와 약국에서 일한 어머니가 1939년 이혼하고 각각 재혼하면서 다른 집으로 입양됐다. 카톨릭 기숙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들롱은 17살 때 프랑스 해군에 입대했다가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했다. 이에 1956년 제대 후 21살에 파리에 정착했다.
이후 들롱은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그의 첫 데뷔작은 영화 ‘여자가 다가올 때’(1957년)이었다.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것은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에서 신분 상승의 욕구에 사로잡힌 가난한 청년 역할로 출연하면서다. 이 영화로 그는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르며 ‘세기의 미남’이란 별명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들롱은 이후 ‘프렌치 누아르’의 대명사로 불리며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들롱은 50여 년간 평단과 대중의 환호 속에 9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 중 80여 편에서 주연을 맡았다. ‘태양은 가득히’를 비롯해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태양은 외로워’(1962), ‘볼사리노’(1970), ‘조로’(1975), ‘카사노바’(1991) 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수상 내역도 화려했다. 1985년 제10회 세자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1995년 제4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곰상을, 2012년 제65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2019년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1991년에는 프랑스 최고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는 일생 다양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녀 배우와 꾸준한 스캔들, 마약, 사망한 보디가드에 대한 의혹, 가정 폭력, 탈세 혐의 등 다양하다. 그는 가정폭력의 논란을 겪던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당시에는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오직 내 배우 경력뿐”이라며 눈물의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들롱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스위스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8월 뇌졸중으로 입원해 수술받은 이후 요양생활을 해왔다. 그가 공식 석상에 얼굴을 비춘 것은 2019년 5월 칸 국제영화제가 마지막이다.
한편 들롱의 아들 안토니는 2022년 3월 프랑스 라디오 RLT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아버지가 안락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알랭 드롱은 “안락사는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특정 나이나 시점부터 병원이나 생명유지 장치 없이 조용히 떠날 권리가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알랭 드롱이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