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는 시행된지 25년 만에 ‘일국’만 남고 ‘양제’가 사라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일 홍콩 주권 반환 25주년 연설에서 ‘일국양제’를 통해 홍콩의 자본주의 제도를 유지하겠지만 중국의 사회주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
시 주석은 30분가량 이어진 이번 연설에서 ‘일국양제’를 20번이나 언급하면서 “일국양제가 홍콩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성공을 거뒀다”고 자평했다. 시 주석이 이렇게 평가한 이유는 그가 생각한 일국양제에는 애초에 홍콩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겠다는 전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과 중국은 1984년 영국·중국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을 통해 홍콩이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 50년 동안 고도의 자치와 함께 기존 체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일국양제에 합의했는데, 시 주석은 이를 홍콩달러 발행이나 자치 행정권을 주는 정도로 해석한 듯하다.
홍콩의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시장경제를 50년간 유지하는 것이 ‘일국양제’라는 서방의 시각과 달리 홍콩을 중국의 사회주의 정치체제에서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 시 주석의 생각이다.
중국은 2020년 홍콩의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고 홍콩 내 민주화 세력을 뿌리 뽑았다. 반정부 시위를 이끌던 인사들은 대부분 망명하거나 감옥에 갇혔다. 시 주석의 홍콩 방문에 반대 시위가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홍콩의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 서방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홍콩 민주주의 제도의 해체, 사법부에 대한 전례 없는 압력, 학문과 문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억압, 수십 개 인권 단체와 언론사의 해산이다”(에이드리언 왓슨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 “중국이 약속을 지키도록 최선을 다해 홍콩이 홍콩인에 의해 홍콩인을 위해 통치되도록 할 것”(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저지할 마땅한 카드가 없다.
미국은 이미 2년 전 중국이 홍콩의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할 때 중국 관리들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는 건 물론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초강수까지 뒀다. 국제사회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우려 등 현안이 가득한 상황에서 홍콩 문제에 힘을 쏟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中, 일국양제로 평화통일…대만 “거부한다”
홍콩의 중국화는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코로나19 발생 이후 2년6개월 만에 중국 본토 밖으로 나간 곳이 홍콩이고, 전용기를 이용했던 과거와 달리 고속열차를 선택해 ‘하나의 중국’을 강조했다. 또 홍콩 주권 반환 25주년 기념식에는 홍콩의 깃발보다 훨씬 큰 중국 오성홍기가 걸렸고, 5년 전과 달리 중국 국가휘장도 등장했다. 존 리 신임 행정장관을 포함한 홍콩 행정관료들은 취임식에서 시 주석에게 깊숙이 허리 숙여 인사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캐리 람 전 행정장관이 5년 전 취임 선서 때 시 주석과 악수를 했던 것과 사뭇 달라진 풍경이었다.
중국이 홍콩의 경험을 앞세워 대만을 장악하기 위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도 주목된다. 일국양제는 중국의 홍콩, 마카오 통치 원칙이기도 하지만 중국이 꿈꾸는 대만 평화통일 방안이기도 하다. 장기집권을 준비하고 있는 시 주석 입장에서 ‘대만 통일’은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볼 수도 있다.
|
대만은 일국양제에 대한 거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대만의 중국 본토 담당 기구인 대륙위원회는 지난 1일 “홍콩의 민주주의, 인권, 자유, 법치는 25년 전에 비해 심각하게 후퇴했다”면서 “중국 공산당이 홍콩에서 실시한 ‘일국양제’의 본질은 보편 가치와 상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난했다. 대륙위는 이어 “대만 인민들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 전세계와 중국 공산당에 일국양제를 거부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거듭 표명했음을 다시 한번 언급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