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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독일군에게 도브로월스키는 ‘도살자’나 ‘30번 요원’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것으로 기록돼 있고 지역 정보 수장으로 승진까지 했다. 소련은 그가 ‘우크라이나 인민에 최악의 적’이라며 5만 루블 현상금을 내걸었다.
1943년 도브로월스키는 아내 바버라와 생후 두 달 된 아들 콘스탄틴을 독일로 피란 보내고 본인은 체르니히우에 남았다. 바버라는 전쟁 후 영국으로 이주해 조지아 출신 데이비드 메트러웰리와 재혼했고, 콘스탄틴은 계부의 성을 따랐다.
콘스탄틴은 MI6 116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장으로 내정된 메트러웰리를 낳았고, 그 자신도 영국군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복무했다.
메트러웰리는 조부가 나치 부역자였다는 보도가 나오자 외무부를 통해 성명을 냈다. 외무부 대변인은 “메트러웰리는 친조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알지도 못한다. 메트러웰리의 조상 일은 많은 동유럽계 사람들이 그렇듯이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런 복잡한 유산 때문에 메트러웰리는 MI6에서 갈등을 예방하고 오늘날 적대국의 위협으로부터 영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념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