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의 또 다른 노인보호구역에서 만난 70대 상인은 종종 접촉사고를 목격한다고 했다. 특히 이곳은 중간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통행 차량이 기본적으로 많지만 운전자들이 실버존인 것을 잘 모르고 양보없이 달린다는 것이다. 인근의 한 상인은 “여든 넘으신 어르신들이 우산을 지팡이 삼아 많이 짚고 다닌다. 어쩔 수 없이 걷는 속도가 늦다”며 “차량도 보행자를 조심해서 속도를 늦춰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데일리가 찾은 도심 곳곳의 실버존은 운전자들의 무관심에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인보호구역 내 고령 보행자 사고는 매년 늘고 있는 실정이다. 실버존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단속장비 확충과 횡단신호 시간 연장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일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 시스템(TAAS)에 따르면 전국 노인 보행 사고는 2023년 1만 921건→2024년 1만 1301건→2025년 1만1498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사망자 역시 550명→616명→619명으로 늘었다. 노인보호구역 내 사고도 2023년 13건에서 2024년 24건, 2025년 88건으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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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과 비교해 인프라 격차도 뚜렷하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노인보호구역은 4511곳으로 어린이보호구역(1만 6141곳)의 28% 수준에 불과했다. 서울의 경우 지난 8월 기준 197곳에 그쳐 스쿨존(1618곳)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심재익 한국교통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노인보호구역은 지정 수 자체도 절대적으로 적다”면서도 “시설만 지정해 두고 안전시설 투자가 뒤따르지 않아 ‘무늬만 보호구역’에 머무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무인단속장비 설치 의무 규정이 없다는 점도 안전 공백을 키우고 있다. 서울 시내 노인보호구역 중 과속 단속 카메라가 설치된 곳은 60곳뿐이다. 법령상 무인단속장비 설치가 의무화된 스쿨존과 달리 실버존은 강제 조항이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치구 요청에 따라 경찰 심의를 거쳐 선별적으로 설치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법적 처벌 수위도 큰 차이를 보인다. 김원용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어린이보호구역 사고는 12대 중과실에 포함되고 ‘민식이법’으로 처벌도 대폭 강화했다”면서도 “노인보호구역은 여전히 빠져 있다. 어린이와 노인 모두 보행약자인데 노인 사고는 사회적 관심이나 법 개정으로 이어질 계기가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실버존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보행 신호 시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일반 횡단보도는 보행 속도를 초당 1m로 설정해 설계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보행 약자를 위해 일부 보호구역의 녹색 신호 시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횡단보도 중간에 교통섬을 설치해 보행자가 다음 신호에 안전하게 건너도록 돕는 것도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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