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 속 삼성전자가 기대에 못 미치는 3분기 성적표를 발표하며 위기론이 현실로 다가왔다. 주력 제품인 범용 D램까지 주춤하면서 매번 반도체 실적을 뒷받침했던 메모리사업부마저 흔들리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기술력 확보가 삼성의 초격차를 되찾을 ‘열쇠’라고 진단했다. 특히 내년 HBM4에서는 결판을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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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005930)는 올해 3분기 실적에서 영업익 9조1000억원을 기록하며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내놨다. 전문가들은 적자의 늪에 빠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시스템LSI 사업부를 두고 포트폴리오 다변화 등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두 사업부는 합쳐서 올해 3분기와 4분기 각각 5000억원 안팎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신현철 광운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삼성 시스템LSI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이미지센서에 집중하고, 파운드리는 주요 대기업 수주에만 몰입하고 있다”며 “매출 규모가 크고 (사업성이) 확실한 제품에 주력하고 있는데, 여기서 경쟁력 확보를 못하고 있는 데다 다른 포트폴리오가 충분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메모리 사업에서 추가 적자가 발생하며 기대보다 낮은 실적을 보였다는 분석이 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글로벌산업분석부 연구위원은 “추정치 대비 차이는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에서 크게 발생했다”며 “인센티브 충당금 외에 파운드리에서 추가적인 적자 반영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3분기 실적은 주춤했지만 향후 인공지능(AI) 시장의 성장성을 감안하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AI에서 소프트웨어 시장은 이제 태동기”라며 “삼성의 잠정 실적은 기대보다 낮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본다. 일시적인 현상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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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발표와 동시에 사과문을 발표한 삼성전자를 보는 시각도 분분하다. 기대에 못 미친 성적표이긴 하지만 적자를 기록하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크게 나아진 수치다. 수뇌부가 직접 사과까지 해야 하는지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와 함께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채민숙 연구위원은 “정확한 사업 진행 현황과 방향성에 대한 시장 소통은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직접 삼성의 위기를 언급한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이 기술력 확보와 조직문화 재건을 강조했단 점에서 올해 삼성엔 변화의 바람이 크게 불 전망이다. 단순히 투자자를 겨냥한 메시지가 아니라 조직 내부에도 경종을 울리면서 칼바람을 예고한 셈이다. 아울러 노후화된 조직을 개편하기 위한 전 부회장의 대대적인 쇄신을 예고한 신호탄이란 분석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사과문은 향후 있을 인사에 일종의 신호탄”이라며 “올해 인사에서 대규모 물갈이가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신현철 교수는 “요즘 삼성이 노쇠하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맞는 말”이라며 인적 쇄신 필요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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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초격차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선 HBM에서 선두를 탈환하는 게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현재 5세대인 HBM3E 8단과 12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위해 퀄(품질)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연내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반면 SK하이닉스(000660)는 12단 제품을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데 성공해 연내 엔비디아에 공급할 예정이다. 파운드리 사업은 대만 TSMC에 밀려 좀처럼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김형준 교수는 “삼성은 HBM4에서 결판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파운드리는 지금은 계륵일 수 있지만 추후 몇 년간 적자를 보더라도 가져가야 할 사업”이라며 “국가적으로 봐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파운드리는 기술력 문제와 더불어 고객 생태계가 충분히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예상보다 저조했던 것”이라며 “삼성이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는 파운드리를 어디까지 제대로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목표 설정,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기술적 솔루션을 충분히 다양하게 갖추면서 제공하는 것, IP 벤더들과 협업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용식 교수는 “삼성 경영진은 강하게 일에 몰입하는 걸 원하고 있는데, 이건 삼성의 상징성이기도 하다”며 “우리와 함께 하지 않을 사람들은 떠나라는 메시지도 던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