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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혐의 재판에서 한 통의 영문 이메일이 공개됐다. 2014년 12월8일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의 진 사이크스 당시 인수합병(M&A) 사업부 공동회장이 이날 재판에 참석한 정현진 골드만삭스 한국대표 등 3명에게 보낸 이메일이었다. 사이크스는 IT 전문가로, 과거 애플 창업주인 고(故) 스티브 잡스를 전담했던 뱅커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부회장과 첫 인연을 맺은 것도 잡스의 소개 때문으로 전해졌다.
이메일엔 당시 이 부회장과 나눈 대화 내용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당시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채 7개월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홀로서기에 나서며 삼성의 미래를 짊어져야 했던 이 부회장의 어깨가 무거울 때였다.
사이크스는 이메일에서 ‘제이(Jay·이 부회장 영문이름)가 오늘 나를 만나러 왔다’며 대화 내용의 상당 부분은 삼성전자의 사업 전반에 대한 것이었다고 썼다. 그는 고성능 부품, 디스플레이, 폼 팩터, 카메라 기술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의 제품 차별화,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 전략, 소프트웨어 분야의 투자 확대, 애플과의 지속적인 공급 관계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적었다. 이 부회장이 이미 7년 전부터 경영철학 및 사업구상을 놓고 적잖은 고뇌에 빠져 있었음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재계에선 당시 이 부회장의 고민이 결국 갤럭시 폴더블폰 성공·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선언·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소프트웨어 발전 전략, 애플에 대한 핵심부품 공급 등 구체적인 성과로 결실을 냈다고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사이크스와 면담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한편, 신사업에 도전해야 한다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 경영전략을 거듭 강조했다. 당시 추진하던 방산, 화학 분야 등 비핵심 사업 정리를 언급한 뒤 “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 때문에 한국 정치인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다고 한다”면서도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접근 방식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고 사이크스는 썼다. 이 부회장은 또 “주주들과 다른 사람들도 (핵심 사업 집중을 통해) 소유 구조를 더욱 투명하게 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을 결국 인정해줄 것”이라고 지배구조 문제에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당시 상속세 문제도 언급했다. 사이크스는 “그(이재용)는 비록 한국 상속세와 미국 세금의 차이점에 흥미를 보이기는 했지만, 부친께서 돌아가실 경우 발생할 세금 문제에 대처할 준비가 잘 돼 있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상속세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된 상태로,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음을 짐작게 부분이다.
이날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의 이메일 공개는 이 부회장과 골드만삭스 측 인사들과의 만남이 경영권 승계·지배구조 개편 등을 위해서가 아닌 삼성의 전반적인 사업 현안 및 미래전략에 대한 자문을 위한 것임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법조계 일각에선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삼성생명 지분 매각 논의를 목적으로 골드만삭스와 잇따라 접촉했다는 검찰 공소장 내용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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