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경인기자] "적대적 인수 제안이라는 것은 `자 봐라. 당신이 기업을 이렇게 바꾼다면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겠느냐`라는 하나의 직접적인 제안이다"
대기업 CEO 출신의 한 기업 사냥꾼이 런던 증시의 이목을 끌고 있다. 싼 값에 매입한 기업을 비싸게 되팔아 고수익을 올리는 `치고 빠지기식 M&A`가 횡행하는 가운데, 적대적 M&A로 인수한 부실기업을 책임지고 턴어라운드(기업회생) 시키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한때 `발렌타인`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주류업체 얼라이드 도멕의 회장을 지낸 게리 로빈슨 경(사진)이다. 래포 매니지먼트(Raphoe Management)를 운영하고 있는 로빈슨 경은 최근 실적에 시달리고 있는 사무실 관리서비스 업체 렌토킬 이니셜(Rentokil Initial)에 대한 적대적 인수 의사를 밝혔다.
대개 영국의 사모펀드들이 부실 기업을 인수하면 이를 비싼 값에 기관 투자가들에게 되팔아 쏠쏠한 이득을 챙기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로빈슨 경은 `약탈` 뒤에 떠나는 `유목민 방식`이 아니라 눌러 앉아 씨를 뿌리는 `농경민 방식`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래포는 렌토킬을 인수한 뒤 상장을 유지하면서 경영진 일부만 해고한 뒤 직접 나서 턴어라운드를 진두지휘할 방침이다. 래포가 이 같은 계획에 성공할 경우 렌토킬 투자자들은 주가 상승으로 평가익을 얻게될 뿐 아니라 일부 현금도 손에 넣게된다.
로빈슨 경은 "회사를 눈에 띄게 변화시킬 것"이라며 "그 방법은 주주들에게 이득을 주는 것은 물론, 결국 나에게도 명백한 보상을 안겨 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인이 9만명 이상에 달하는 렌토킬은 사무실 청소, 보안, 화장지 제조, 해충방역 등 다양한 오피스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회사의 가장 오랜 최고경영자(CEO)로 20년간 두 자릿수 성장을 이끌어온 클리브 톰슨 경은 작년 5월에 사임했다. 이후 전 뉴스코프 매니저인 더그 플린이 CEO직을 맡았으나, 경영난을 벗어나는 데는 실패했다. 렌토킬은 지난주 분기 순이익이 전년비 무려 44% 감소했다고 발표하면서 업계의 경쟁 심화를 그 이유로 들었다.
플린 CEO는 "톰슨 경은 단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회사를 운영해 왔다"며 "그같은 문제점을 수정하기 위해 인력 충원를 비롯한 필수적인 조치들을 취했고, 이런 조치가 실효를 발휘하는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투자자들과 주주들을 다독였다.
현재 투자가들의 반응은 극도로 양분되고 있다. 로빈슨 경의 인수가 렌토킬에 약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그가 인수에 성공할 지 자체도 의문스럽다며 반감을 표하고 있다. 일단 주가는 적대적 인수 시도를 호재로 인식,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
로빈슨 경은 현재 시장 가치 약 50억달러에 달하는 렌토킬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는 "어떤 일이 될성 부르다 싶을 때 내게 돈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인수 자금 조달엔 문제가 없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아일랜드 더니골주에서 10형제 중 9째로 태어난 로빈슨 경의 경영철학은 항상 `명확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것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하고자 하는 것과 성공, 실패의 의미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종종 경영진들이 경영에 있어 컨설턴트의 자문을 받는데 불만을 표시한다. "사업을 영위하면서 그 사업의 핵심 사안에 대해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도대체 왜 경영진의 자리에 있는 것인가?"라고 그는 말한다.
로빈슨 경은 과거 코카콜라 영국법인과 TV회사인 그라나다의 회생을 이끌어 턴어라운드 전문가로 명성을 얻게됐다. 이후 2003년과 2004년 영국 BBC방송의 TV 프로그램인 `보스가 누구인지 보여줄 것(I`ll show them who`s boss)`를 진행하며 명성을 얻기도 했다.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경영 관련 자문을 했다. 종종 요리사를 바꾸라거나 혹은 다른 고용인에게 회사를 운영하게 하라는 등 잔인한(?) 충고를 해,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프로그램은 당시 매우 높은 인기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의 새로운 시도가 `악명`으로 끝날 지, `유명세`를 더하는 계기가 될지 관심을 끈다.